신의 역사 - 신의 탄생과 정신의 모험
카렌 암스트롱 지음, 배국원 외 옮김 / 교양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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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 바디스Quo vadis』를 읽은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문고판 축약본이었을 것이다. 신과 종교에 대해 무지했던 시기였으니 이 책이 그리 감동을 준 것도 아니었다. 사치와 향략으로 점철된 로마 문명과 숱한 박해와 고난에도 결국 인류의 보편적 종교로 자리 잡은 기독교의 대비가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에 대한 아우라가 영향을 미쳤을 리도 없다. 계몽사판 세계문학 전집 100권 중 하나로만 기억한다. 소설의 영향은 아니었겠으나 크리스마스 즈음에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서 초코파이를 받아먹은 게 종교 경험의 전부다. 풍광 좋은 절에 들러 문화재를 둘러보는 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감동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엊그제 겨울 산, 돌계단을 디뎌 개심사에 다녀왔다고 마음이 열리거나 번뇌가 씻기지도 않는다. 종교에 대한 관심과 신에 대한 믿음은 별개의 문제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예수는 신화다』 등의 책을 보는 동안에도 해결되지 않았던 질문 중의 하나가 ‘유일신’에 대한 그들의 공고한 믿음이었고, 유대교와 이슬람과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의 일치 여부 혹은 배타적 태도의 근원이 궁금했을 따름이다. 신의 존재 여부와 종교적 도그마는 한 인간 혹은 인류 전체의 역사를 뒤흔든다. 여전히.

극단주의 테러와 종교 전쟁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숱한 사이비 논쟁이나 다양한 분파를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때때로 그 열정과 공고한 신뢰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그러한 삶은 그렇지 않은 삶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면 카렌 암스트롱이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첨부된 지도를 따라가며 신의 기원과 유일신의 탄생 과정을 시작으로 기독교, 이슬람의 신 뿐만 아니라 철학자, 신비주의자, 종교개혁가의 신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카렌 암스트롱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하나의 관점으로 신을 해석하거나 분석하는 대신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 과정을 살피는 데 그쳐 객관적 거리두기에 성공한 듯하다.

아주 먼 옛날, 수천 년 전의 기록을 검토하고 예수와 무함마드를 대하는 태도 삼위일체의 해석 문제 등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의 뿌리와 차이를 확인하는 동안 인류가 걸어온 종교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다. 계몽주의 시대 인간 이성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합리주의 탄생의 바탕을 이룬다.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합리적 근거가 불가능한 신이 지배하는 세계에 균열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문명발달의 과정이다. 신이 설 자리가 좁아지기도 전 성급하게 신의 죽음을 외친 사람들이 많다. 시대를 앞선 자들의 삶은 괴로웠고 용기 있는 발언은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실존적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발언 내용이나 철학적 사유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종교가 사라지거나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 이슬람 모두 유일신, 즉 우상 숭배 금지로부터 모든 갈등이 배태되었다. 아랍 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부정하는 쿠란의 급진적 구절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살육이 시작되었다. 이슬람은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조차 부정하는 극단적 유일성의 개념에 집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제국에서 완전한 종교적 자유가 가능했다. 종교적 배타성으로 인한 인류 역사의 고통과 눈물은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종교 전쟁과 마녀 사냥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편견과 갈등을 다룬 숱한 기록과 고민들은 여전히 난망한 문제다. 힌두교와 불교를 다루기는 하지만 저자는 주로 세 종교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창조과학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을 만큼 종교도 발전과 진화를 거듭한다. 나름의 설득력을 위한 노력은 종교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현실적 삶을 위한 인간의 정신적 보호 장비로 애용된다. 무엇을 믿는 어디를 바라보든 자유지만 신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아 보이지 않는다.

카렌 암스트롱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신의 미래를 신의 죽음과 인간의 해방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틸리히의 ‘신 위의 신’, 화이트헤드의 ‘위대한 동반자’ 개념을 논하지만 우리가 믿어온 신에 대한 부정이나 새로운 신을 위한 희망이 아니다. 신의 존재 유무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은 헛되다. 어느 쪽이든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신과 종교에 대한 역사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지만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특정 지역과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앎은 반드시 필요하다. 타인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말과 행동의 맥락과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지금, 여기의 삶이 중요하든 내세와 죽음 이후의 영생에 목숨을 걸든 아무도 그 선택을 가로막거나 방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종교의 사회, 정치적 기능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결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종교가 있든 없든 ‘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피해 갈 수 없다.

인간은 공허함과 황량함을 견딜 수 없기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그 공백을 채울 것이다. 근본주의의 우상은 신을 대신할 수 없다. 미래를 위한 활기찬 새 신앙을 창조하려면 신의 역사에서 교훈과 경고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 6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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