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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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신문을 보며 세상에 눈뜨던 사춘기 시절, ‘아침마다 피 묻은 칼이 튀어나오는 신문을 들고’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개가 사람을 문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대개 사건, 사고에 눈이 가고 관음증의 강도는 배가 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뉴스를 접할 때마다 레거시 미디어와 황색 저널리즘을 구별하던 시대는 차라리 낭만적으로 보일 정도다. 정치는 혐오 장사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언론은 클릭수로 돈을 챙길 때 우매한 군중은 자신의 뇌를 절여 맹목적 증오와 진영 논리에 눈이 먼다. 반복 재생되는 유튜브와 쇼츠, 릴스, 틱톡은 필터 버블을 만들고 생각하지 않는 개인은 에코 체임버에 갇힌다.

어쩌면, 정치가 생활을 바꾸고 투표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감시와 처벌을 게을리하는 투표 이후의 비판적 눈길과 적극적인 참여가 자기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정체의 원리를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개인이 가진 지식과 정보, 판단 능력, 논리적 사고가 부족할 때 침묵의 카르텔은 무서운 속도로 서로의 이익을 챙기며 견고한 구조를 만든다. 선의에 기댄 정치 체제는 망상에 불과하며 견제 장치 없는 권력과 비판 기능을 상실한 언론은 현실을, 아니 바로 매일매일의 삶을 참담하게 만든다.

절망과 고통이 삶의 디폴트 값이라면 꿈과 희망은 현실을 견디는 마약일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만큼 순진한 생각이 ‘설마’를 낳고 정치적 퇴행을 양산한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 관습적 사고에 균열을 일으켰다면, 이길보라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은 경험의 한계를 절감케 했고,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언론과 현실의 역학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라는 이상의 말이 새삼스러운 건 자신이 뱉은 말과 행동과 그 태도가 본질이라는 걸 우리는 각자 최선을 다해 외면하는 듯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이익에 반하는 짓을 꺼린다. 그래서 이해관계를 떠나서는 숨조차 쉬지 못한다. 그것이 부모 자식, 형제자매, 친구와 연인이어도 다르지 많을 때가 많다. 하물며 사회적 관계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과 언론, 기업과 정부는 불가근 불가원이다. 여기에 몸담은 사람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제 기능을 상실하면 가장 고통받는 건 바로 나, 너 그리고 우리들이다.

고통의 저널리즘을 넘어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이영희 선생 이후 대한민국의 언론과 이익 카르텔을 묵인한 건 뉴스 소비자들이다. 빈곤 포르노를 넘어 개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언론은 많지 않다. 김인정 기자는 뉴스 너머의 세상을 본다. 그리고 앵글 밖의 1인치를 고민한다. 언론의 사회적 기능, 공적 역할에 관한 지루한 논쟁과 거리가 멀다. 개인적 소회, 경험으로 체득한 고민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경찰,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에 대한 신뢰, 언론과 기자에 대한 존중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정치혐오만큼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는 권력기관과 언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자정 능력은 없으나 사회의 공기처럼 중요한 분야를 방치하면 악취가 진동한다. 진영의 문제도 아니고 정치적 신념의 문제도 아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구조가 단단하지 못하면 집이 무너진다. 한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개인기와 리더십이 아니라 개개인의 비판적 사고에 기반한다. 논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개인은 나이, 직업, 성별, 종교와 무관하게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단단한 자기 확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불공정과 몰상식은 세습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목숨 건 사투가 벌어지는 동안 관중들은 자기편만 응원한다. 견제와 균형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냉정한 시선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내로남불 끝판왕들의 설전을 눈여겨보자. 자기 삶의 근본적 문제를 살피려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대신, 내 안의 편견을 점검하고 이성의 칼날을 벼려야 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지만 마비된 이성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

저자는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흥밋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라고 일갈한다. 구경하는 대중의 음험한 눈길, 팔짱 낀 채 외면하거나 관음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영원히 움직이는 텍스트’를 꿈꾸는 저자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대신 이렇게 고통스런 텍스트를 소비하는 각자의 태도를 점검할 시간이다.

늘 정확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 둥글게 휜 포물선처럼 선명한 흔적을 남기며 날아가, 깔끔하게 과녁을 맞히는 질문. -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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