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가슴에 닿는 문장에 밑줄을 치고 필사하거나 사진을 찍습니다. 가끔 저는 연필이 없거나 메모지가 없을 때 급한 마음에 책 모서리를 접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접어놓은 책 귀퉁이는 귀여운 강아지의 귀처럼 보입니다. ‘도그 이어dog-ear’라는 영어 단어는 책장의 ‘모서리를 접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준비하며 가제를 <생각의 모서리를 접다>라고 지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삶엔 쉼표가 필요하고, 모서리를 접어 놓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현실과 일상 때문에 책읽을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책을 멀리하니 지금-여기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이 책은 도서관에 갇힌 인문학, 현실과 유리된 테스트를 거부합니다. 대체로 우리가 겪는 삶의 문제들은 때와 장소와 달라졌을 뿐 누군가 이미 겪었던 일들입니다. 기시감이 들 정도로 비슷한 고민을 책 속에서 발견할 때마다 밑줄을 그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혹은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도 별로 다르지 않은 문제를 안고 삽니다. 사람 사는 게 별거 아니라는 건, 그 고민의 깊이와 넓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 방법의 실마리를 찾고,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감히,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함부로 충고하는 주제넘는 짓을 할만한 깜량은 없습니다.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잔소리는 꼰대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정도는 눈치껏 알만한 나이가 됐으니까요. 다만, 타인과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인류가 쌓아온 인문학의 개념들은 지식에 머무는 게 아니라 실제 삶에 적용되고 나의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만의 고통과 슬픔, 내가 겪는 절망과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살피는 동안 우리는 한발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습니다. 인간은 나이가 먹어 늙는 게 아니라 성장을 멈추는 순간 노인이 됩니다.

젊꼰이 되지 않을 권리, 여전히 성장하는 노인이 될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각자의 몫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여전히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성장하는 기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 메데이아, 소스케, 영화 <위플래쉬>와 <세렌디피티>, 미드 <오자크> 그리고 발터 벤야민과 마르크스와 칼 융까지 잡다한 이야기들을 통해 선택, 속도, 시선, 사회적 상상력, 시간, 성장을 주제로 익숙하거나 낯선 개념들을 설명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들의 문제를 점검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책을 만나셔도 좋고 개인적 고민의 실마리를 찾으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모든 텍스트를 오독할 자유와 권리를 가진 독자의 몫일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힘겨운 모든 틈과 틈 사이로 스미는 빛을 따라가는 시간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늘 그러하듯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삶, '나'의 시간들만 오롯이 내 앞에 남겨져 있으니까요.

책이 나올때마다 말포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애정과 수고로움을 보태주시는 편집자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출판사 관계자 모든 분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탄생한 책입니다. 부족한 점은 오롯이 제몫이지만 읽을만하면 모두 도움을 주신 분들의 덕분입니다.

계속해서 읽고 쓰는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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