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힘 Philos 시리즈 4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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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지막 3개월간 주제는 「신화」였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막론하고 신화는 공동체의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민중들의 생각과 경험과 기억이 보태진 집단 창작물이 바로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기록하면서 현재의 형태로 고정되었으나 기록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니 원본은 의미가 없고 디테일에 목숨 걸 필요도 없습니다. 세계 각국의 신화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고 문명 시대에도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21세기에도 라그나로크 같은 게임의 세계관을 제공하며 스타벅스 커피잔에도 세이렌이 새겨질 만큼 자본주의 첨병으로도 활약합니다. 그래서 조지프 캠베은 “꿈이 사적인 신화”라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이라고 정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종횡무진 세계 각국의 신화를 누비며 비교 신화학의 전설이 되어버린 저자에 대한 찬사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1987년에 세상을 떠난 조지프 캠벨의 이 책은 199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1992년 이윤기가 번역했고, 2002년 개정판이 나왔다가 2020년 출판사를 바꿔 재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싶은 책이지만 배경지식이 전혀 없거나 신화 입문용으로는 조금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너무 쉽고 재밌는 콘텐츠에 익숙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적당한 난이도는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어 빌 모이어스는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인상적인 발언인데, 이 말은 조지프 캠벨이 천착했던 칼 융의 ‘집단 무의식’을 설명합니다. 신화는 근대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전부터 군집 생활을 했던 인류 공동체의 삶과 꿈을 반영합니다. 원형적 상징으로서 자연에 대한 공포,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신화는 태초의 인류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조지프 캠벨은 “‘산타 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힌두의 구루導師의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산타 클로스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어주는 은유이지요. 관계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체험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산타 클로스는 없습니다. 산타 클로스는 관계를 인식하는 길로 아이들을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며 동심을 파괴합니다. 종교와 신화의 관계를 설명하는 태도가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내재한 서양의 전통과 문화와 달리 우리는 유교적 전통과 가부장적 결속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화,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게 무슨 삼각김밥 끈 떨어지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으나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욕망의 하수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자유의지라는 거대한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사유하는 기능을 점검하지 않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겨울 산에서 길을 잃어 아재 둘이 동사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동호회원들의 무관심보다 어둡고 캄캄한 산속에서 난감했을 불안과 공포가 떠올라 한동안 마음이 쓰였습니다. 인류는 여전히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먼 훗날 신화로 전해지지 않을까요.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동해로 떠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대신 다가올 미래는 결국 과거와 현재의 결과일 뿐이라는 걸 알면 어차피 연말에 후회만 남기는 신년 계획 대신 내 삶의 신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와 태도를 점검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달력이 바뀐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희망 고문 대신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 신화 읽기를 통해 우리 삶에 숨겨진 메타포를 읽어내는 방법일 겁니다. 그러니 계속 따로, 또 같이 걸어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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