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현실과 유리된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적이 없다. 모든 책은 인간 스스로 자기를 알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나’가 아닌 ‘너’와 ‘그들’ 그리고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태’를 향한 호기심과 관찰의 탐구 과정을 담은 기록인 책은 폭발적 지식의 빅뱅을 가능케 했다. 단기간에 엄청난 지식과 정보 습득이 가능해지자 과학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달했고 인간의 인지 능력과 사고력은 무엇을 상상하든 실현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하늘이 파란 이유도 노을이 붉게 물드는 과정도 알게 됐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 불합리한 선택, 종교적 도그마, 학살자의 심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책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책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적이 없는데도 스스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 버렸다.
인터넷 이후 시대, 즉 정보화 시대의 독서는 이전 시대와 그 목적과 방향이 전혀 다르다. 지식의 생산자였던 연구자들은 건재하나 소비 대중은 폭과 넓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누구나 읽고 쓰는 시대를 살면서도 ‘독서’는 가장 느린 매체가 되어 외면받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점점 중요해지는 문해력과 미디어 리터러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쇼츠, 릴스, 틱톡 등 점점 호흡이 빠르고 단축, 요약된 정보를 소비한다. 유일하게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는 건 인간의 욕망뿐이다.
현상이 어떠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창현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권과 2권은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안간힘으로 보여 안쓰러운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취향 저격인 책에 대한 상찬은 낯이 간지러워 솔직한 이야기를 쓰기가 어렵다. 만화에서 강유원을 만나는 어색함과 만화는 책을 읽기 싫은 사람들이 보는 거라는 편견이 어우러지면 이 책이 놓일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통쾌함을 느끼고, 동류의식에 위로를 받고. 나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또 있을 거라는 기이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 혼자 뿐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중독인 것을.
만화의 소재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없다. 하지만 가벼운 독서법, 자기계발서, 서평집 따위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 한 권쯤은 괜찮지 않은가. 왜 문학을 넘어선 자리에 이 책이 놓여야 하는지, 왜 강유원을 등장시켜 독서의 본질과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점검해야 하는지 살펴 볼 수 있다면 이 책은 서가의 어떤 책보다 중요한 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다.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거나,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냐고 묻는 정도가 돼야 재밌는 책이다. 왜 책을 읽어야 하냐거나 독서가 꼭 필요하냐고 생각한다면 다른 책을 살펴보는 게 좋다.
유머를 이기는 방법은 없다. 독서 클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피는 건 메시지를 담는 포장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을 살펴보며 자기 삶의 여유(개그)와 태도(의미)를 점검할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해 왜 사느냐고 묻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드물다. 눈앞에 현실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늘이 흐리고 내일 아침은 혹한의 겨울이 시작될 거라는 예보 때문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