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창비시선 491
유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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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겨울이라고 어는 건 아니다. 몸이 봄이라고 건강해지는 게 아니듯이. 찬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해가 지면 해가 지는 대로 오늘은 과거가 되고 어제와 조금씩 멀어진다. 오래된 기억은 추억으로 갈아입고 선택적으로 갈무리된다. 지나간 모든 일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싶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현재를 지배하며 영혼을 잠식하고 미래를 채운다.

PTSD로 고통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를 억압하거나 절망과 슬픔을 눌러 담은 사람에게도 다르지 않다.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이라고 다독여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시는 슬픔의 미학이다. 유현아의 슬픔은 다른 시인의 슬픔과 다르지 않다는 게 아니라 허무와 냉소, 슬픔과 고통, 절망과 분노의 틈으로 자라는 작은 희망 같은 걸 믿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시집을 뒤적이는 게 아닌가.

오늘의 달력

어제의 꿈을 오늘도 꾸었다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절망의 바닥을 보았다

바닥 밑에 희망이 우글우글 숨어 있을 거라고 거짓말했다

한 장을 넘겨보아도 똑같은 달의 연속이었다

못 하는 게 없는 것보다 어쨌거나 버티는 게 중요했다

바닥 밑에 바닥, 바닥 밑에 바닥이 있을 뿐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바닥에 미세한 금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았다

바닥의 목소리가 뛰어올라 공중에서 사라질 때까지

당신의 박수 소리가 하늘 끝에서 별처럼 빛날 때까지

오늘도 달력을 넘기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당신의 애인에게서 내일의 꿈을 들었다

서시에 해당하는 이 시에서 제목을 골랐다. 양경언은 해설에서 이 시집을 「사라지는 세상을 위한 시」라고 명명한 다음, “유현아의 시에서 희망의 얼굴은 바닥에서 나타난다.”라고 말한다.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절망의 바닥을 보았다”면 희망은 디폴트 값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절망은 바닥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절망의 바닥을 뚫고 내려가려 애쓰기도 한다. 대책 없는 희망, 실현 불가능한 기대는 더 큰 절망을 예비하거나 엄청난 분노로 전환된다.

질문들

광장에서

오늘도 침묵이 침묵처럼 번지고 있다

거짓말들은 모여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

거품처럼 달아난 목소리는 지워진 경계처럼 낯설게 오다 도망친다

저녁이 되면 희미한 빗살무늬 기억이 켜지는 그곳에 치켜뜬 눈들이 박혀 있다

완벽하게 행복해,라는 대답은 새빨간 비문이다

입에서 수많은 물이 넘쳐흘러 도시를 습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에는 별 모양 하나가 반짝이며 광장의 눈동자 속으로 들어왔다

울음을 흡수하지 못한 별의 흉터가 하나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도 침묵이 아니다. “완벽하게 행복해,라는 대답이 새빨간 비문”인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완벽하게’라는 수식어가 없어도 비문이 아닌 건 아니다. 게으른 햇살이 길게 눕는 아침과 금세 어두워지는 저녁이 멀지 않다. 울음을 흡수하지 못한 별들이 반짝이는 건 눈물 때문이 아니라 투명한 슬픔 때문이다. 외로움과 심심함을 구별하지 못하듯 슬픔과 눈물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흉터 난 자리마다 이유가 새겨지듯 애써 외면한 일들은 언제나 반드시 정면을 바라본다. 외로 튼 고개를 스칠 때마다 굳이 슬퍼할 이유가 없다.

때때로 찬 바람이 불어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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