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의 힘 -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특별한 재능
젠 그랜만.안드레 솔로 지음, 고영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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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내성적인 성격보다 외향적 성격을 선호하는 것처럼 우리는 둥글둥글하고 무던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심리학계에서는 “꽤 예민한 사람들highly sensitive person, HSP”이 전체 인구의 15% 정도 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조직과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파레토의 법칙처럼 예민함의 비율은 상대적이다. 사회생물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예민한 개미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외부의 침입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상대적 예민함을 비난받아 본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특별한 재능’이라는 부제에 끌려 이 책을 집어 들 수도 있다.

젠 그랜만과 안드레 솔로는 상담 플랫폼 SR,sensitive refuge의 공동 설립자이자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오랫동안 예민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상담한 결과를 담고 있다. 심리학 실험이나 논문의 결과를 풀어 쓴 이론 위주의 책이 아니라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편에 해당한다. 타고난 기질과 성격도 시간이 흐르고 생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만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민한 사람을 향한 손쉬운 비난 중 하나가 “예민하게 굴지 말라, 과민반응 아니냐, 왜 너만 그렇게 느끼느냐……”라는 등의 말이다. 튀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중간만 해라 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정규분포곡선의 중앙에 자신을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들은 예민함이 약점인지 특별한 재능인지 묻는다. 물론 예민함은 ‘재능’이라는 관점이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 장단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법, 공감 능력, 인간관계와 사랑, 예민한 아이 양육법까지 폭넓게 이어진다. 이해받지 못하는 소수가 틀렸다고 비난받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지금 그대로’ 유지된다. 변화는 느리고 문제는 개선되지 않으며 새로운 시도를 꺼린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예민한 사람들이 유행을 선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현실의 문제점을 짚어내기 때문이다. 사회적 업무, 개인적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은 예민한 사람들의 몫이다. 어느 신혼부부가 집 청소는 더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하자고 정하는 게 옳은지 논쟁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번갈아가며 하는 게 합리적인가에 대한 감정적, 객관적 주장이 오갔다. 물론 정답 없는 싸움에 끼어들 만큼 바보가 아니라서 즐겁게(?) 관전만 했으나 예민한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그 신혼부부가 떠올랐다.

예민함은 진화적 이점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 주변의 15% 정도는 예민한 사람들이다. 부모, 자식, 연인, 친구, 동료, 동호회원 등 어디에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를 포함한 예민한 사람들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15%를 떠올렸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장점과 단점, 넘치고 모자란 부분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세상일 수는 없을까. 나와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다.

사회적 학습력은 공감이 필요하다. 3루에 태어난 사람이 타석에 선 같은 팀 선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을 우리는 매일 목격한다. 공감은 연민의 전제 조건이다. 연민은 슬픔과 고통과 닿아 있다. 외면과 부정이 오히려 현명한 태도일까. 감정은 감기처럼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쉽게 퍼진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의 확산을 공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정서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부른다. 친한 사이일수록 정서가 전염된다. 이것은 공감과 다른 문제다. 긍정적 정서든 부정적 정서든 공감을 하든 말든 정서 그 잡채는 전염된다. 물론 세월호, 이태원 사고 같은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 전염이 발생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만큼 중요한 건 공감이나 정서 전염에 대한 이해다. 개인적 태도는 그에 따른 결과이며 그러한 태도가 모여 결국 자기 삶의 무늬가 된다.

카나리아는 새장에 갇혀 살며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동안 그 일을 충분히 해왔다. 이제 예민한 사람들을 너무 오랫동안 가둬두었던 새장을 부숴야 할 때이다. 예민함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보기 시작해야 한다. 예민함과 그것이 제공하는 모든 이점을 포용해야 할 때이다. -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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