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 - 기적의 진통제는 어쩌다 죽음의 마약이 되었나
벤 웨스트호프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로벌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어렵다면, 신종 마약 거래를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 37쪽

2023년 8월, 신모씨는 오후 8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4번 출구 인근 도로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운전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뇌사 상태로 만들고 도주했다. 검찰에 따르면 신모씨는 사고 전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성형외과에서 시술을 받은 뒤 미다졸람, 디아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두 차례 투약하고, 정상적인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판적 관점으로 언론을 바라보면 가짜뉴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팩트체크 능력을 스스로 기를 수 있다.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에서 전문가와 지식인조차 속기 쉬운 팩트와 확증 편향에 대해 점검한 적이 있다.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 종교적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객관적 사실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본다. 학력, 직업과 무관하게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은 짤막한 뉴스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마약 사건과 뉴스가 자주 등장하는 건 언론사 데스크의 선택과 집중 덕분일 수 있다. 매일 벌어지는 비슷한 사건, 사고 중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주인공, 신문에 실리지도 않는 기사가 어디 한 둘인가. 중요한 건 과거에 비해 최근들어 마약 중독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거나, 사회적 영향이 심각해졌는지의 문제다. 신모씨 뿐만 아니라 재벌 2세, 정치인 자녀 등 마약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과 재력을 보유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복용자를 늘리기 위해 싼값의 마약류, 향정신성 의약품이 할인 판매를 하거나 다량으로 살포됐다는 흔적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이제 어렵지 않게 마약 복용과 관련된 사람들, 뉴스를 접하게 됐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탐사 전문 기자 벤 웨스트호프의 『펜타닐』은 언론의 역할과 기능을 상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제의 원인, 사건의 본질을 따라가며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고 인과관계에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돕는 사회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을 비교, 평가해 보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선명하게 보인다.

미드 <페인킬러PainKiller>는 옥시코돈으로 억만장자가 되는 퍼듀제약 회사의 실화를 다룬다. 이 책에도 소개되는 이야기의 일부다. 펜타닐Fentanyl은 마리화나, 대마초처럼 자연에서 채취한 환각제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제조된 오피오이드를 일컫는다. 마약성진통제로 개발된 약품의 오남용을 지적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펜타닐로 대표되는 새로운 약물의 등장 메커니즘을 파헤치고 다크웹과 결합된 유통, 공급 과정을 파헤치는 르포다. 중국 현지까지 찾아가는 위험을 감수하며 모스크바, 뉴질랜드, 멕시코에 이르는 마약류의 과거와 현재를 살핀다.

미국은 오늘도 ‘좀비마약’ 펜타닐 제조, 유통 중국 기업과 개인에 대해 무더기 제재를 발표했다.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50~100배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카펜타닐 등 수많은 변종을 양산했으나 시작은 선한 목적이었다. 고통을 덜기 위한 약물. 그것이 펜타닐의 본래 기능이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가 살상용 핵무기를 만든 것처럼 어떤 과학, 기술의 발전도 오히려 인간에게 죽음과 고통을 줄 수 있다.

때때로 차라리 죽음을 원할 만큼 커다란 고통을 경험한다. 육체적 고통보다 잔인한 정신적 고통을 주는 타인 혹은 세상을 향한 반항으로 자살을 선택하거나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펜타닐은 우리 시대, 인류가 겪는 고통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피폐해진 영혼과 바늘이 고장난 삶의 나침반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희망이 아닐까. 아니러니하게도 환각의 세계는 현실보다 행복하고, 현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고통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1959년, 벨기에 천재 화학자 폴 얀센이 개발한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의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는 기적의 진통제로 칭송받았던 펜타닐. 그러나, 치사량은 단 2mg! 선악의 저편을 넘나드는 두 얼굴의 약물. 결국 인간의 선택과 자유의지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놀랍게도 여러 법 집행관과 마약 딜러를 포함한 대다수가 피해 감소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약 금지론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사용자를 투옥하는 것보다 NPS의 부정적인 영향을 제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 34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