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원자에서 인간까지
김상욱 지음 / 바다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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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인 환원론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논리 앞에 무력하다. 급기야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consilience’을 들고 나왔으나 번역어에서부터 논쟁이 여전하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만물의 끝판왕인 원자는 인간은 물론 산과 바다 하늘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 지점이다. 김상욱은 만물의 근원인 원자를 들여다보는 물리학자다. 원자가 사는 세상은 수학이 지배하는 차가운 곳이지만 『떨림과 울림』에서 보여준 그의 온기와 상상력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윤동주의 시집 제목에 인간을 보탠 아이디어가 누구의 것이든 물리학적 상상상력이 인문학과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시선’ 혹은 ‘관점’이다. 낯설게 보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이미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노력’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책의 구성과 체계는 명확하다. 1부에서는 원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2부에서는 지구와 태양, 3부에서는 생명, 4부에서는 인간을 다룬다. 1, 2부가 물질의 세계라면 3, 4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결여된 과학은 공허하고, 과학적 사고가 부족한 인문학은 허무하다. 물리학자도 결국 질문의 끝은 말할 수 없는 부분, 어쩌면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경계 지점에 닿기 마련이다. 오직 알 수 없을 뿐이라는 선문답을 하자는 게 아니다. 물질과 비물질, 양성자와 전자, 인간과 세상 사이를 가르는 경계뿐 아니라 기본 입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분자, 분자에서 생명으로 창발하는 과정의 신비는 여전하다.

과학이 호기심의 영역이라면 철학은 질문은 영역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영역은 스스로 묻고 답하거나 관찰하고 연구하며 인과관계를 밝힌다. 분명한 근거와 합리적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논리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든다. 그것은 과학과 철학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버트런드 러셀은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과학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우주의 먼지만큼도 안 된다. 당연히 우리가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겸손은 태도가 아니라 경험과 배움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알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알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가 더 필요하다. 물리학자 김상욱은 나름 독자들을 배려하려 ‘쉽게’ 설명하고 있으나 물리, 화학, 생물, 지구에 관한 지식과 구조는 흘려들어도 좋다. 사람마다 이 책을, 아니 어떤 책이든 읽는 목적이 다르다. 읽은 후에 얻는 것과 잃은 것도 다르다. 호기심과 질문으로 가득한 김상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은 원자에서 출발해서 인간에 이르는 머나먼 여행이다. 동참 여부는 독자의 몫이겠으나 여행 후에 느낀 감상 또한 제각각일 터.

대개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분야와 상관없이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와 같다. 창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 ‘너머’가 궁금한 사람들이다. 책은 창이다. 벽으로 가로막힌 경계를 넘어 이쪽과 저쪽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관계인지 살피려는 자들의 고민이다. 물리학과 인문학을 통섭하기 위해 이 책이 필요한 건 아니다. 김상욱은 돌멩이와 인간이 결국 원자 수준에서 다를 바 없고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스스로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린 질문을 따라간다. 호기심과 질문의 답을 찾는 고민의 과정에 동참을 호소하는 듯 보인다. 다 알고 있는 이의 자만이 아니라 여전히 질문하는 자의 답답함이 느껴진다.

과학은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 이성적 사고의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지극히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으로 행동한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도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비과학적 사고와 행동에 자주 놀란다. 가방끈의 길이, 직업, 나이, 성별, 종교와 무관하다. 믿음의 영역으로 치환시키거나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타인과 세상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런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 상대를 향한 분노와 비난, 억울함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비일비재하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만큼 모호한 옳고 그름,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결국 사실은 진실을 밝히며 상황과 맥락은 논리를 뒷받침하기 마련이다.

물리학자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는 ‘떨림과 울림’의 작가로 기억되는 김상욱의 진지함과 탐구심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늘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과 다른 인간의 놀라운 이야기를 계속 들여다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일이 있을까.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과학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일들로 가득하다. 오늘도 내가 아닌 너, 우리가 아닌 그들이 사는 세상은 많이 다르다. 그러나 너와 나,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세계는 제대로, 단단하게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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