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 - 개정판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숱한 패러디를 낳았습니다. 누군가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변명하고, 누군가는 그때도, 지금도 맞거나 틀리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신념을 지킵니다. 허경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에서 “내로남불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판단과 남의 행위에 대한 판단에 일관성이 결여된 경우를, 곧 ‘자신의 행동과 타인의 행동을 재는 잣대가 다른 경우’를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담론이다.”라고 일갈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말을 수없이 되새깁니다. 물론 이 자명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만. 인간은 옳고 자연은 틀렸을 리 없습니다. 과학기술과 문명 발달은 선이고 이를 가로막는 생각과 태도가 악일 리도 없습니다.

인간도 동물이고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조차 부정하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나(인간)는 맞고 너(자연)은 틀리다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한 존재라는 자만은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환경의 역습은 기후 변화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추측과 주장이 난무합니다. 위기의식은 각자 다르고 일이 터질때까지 비관과 낙관은 교차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 후에도 인간은 서로의 이기심과 욕망에 따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아비규환은 공포와 불안을 숙주로 삼아 세상을, 아니 인간을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앨런 와이즈먼이 인류의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리기 위해 고민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자의 위기의식, 자료와 통계가 뒷받침된 이론적 접근으로 가득했다면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해석의 오류, 또다른 자료,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반론이 제기되고 후속 논의가 이어졌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널리스트의 글쓰기에는 설득의 힘이 있습니다.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저자의 글쓰기 전략은 성공적입니다. 인간이 사라진 지구라는 가정법은 발상 자체가 독특합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상에 불가하지 않다는 사실에 오히려 독자들의 모골은 송연합니다. 인간 없는 세상은 정말 끔찍할까요?

그건 오로지 인간의 관점일 뿐입니다. 우주와 지구의 시간을 다시 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빅뱅부터 현재까지 벌어진 일들을 추억할 수도 없고 겨우 100년을 채우지 못하는 인간은 그렇게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치 않으며 하루하루 일상을 견디기 버거울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과 달리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 힘을 가집니다. 인류가 걸어온 시간, 우리가 견디는 삶, 남은 미래가 오로지 과학에 기댈 수는 없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관점의 이동을 촉구하는 듯합니다. 인간 없는 세상은 지구에서 그저 하나의 종種이 사라지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주인이라는 착각, 우리가 지배한다는 오만,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은 고칠 수 없는 역병처럼 인간 세상에서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미지의 세상으로의 여행’은 재밌습니다. 상상의 영역이니까요. 그러나 ‘그들이 내게 알려준 것들’과 ‘인류의 유산’은 동어반복과 익숙한 이야기들로 조금 지루합니다. 마지막 4장, ‘해피엔딩을 위하여’이 인상깊지만, 그리고 당연하지만, 대안과 해결책은 없습니다. 모임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한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우리 사회, 아니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지점과 자본주의와 기술발달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갔습니만, 결론이나 기발한 해결책은 물론 없었습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깊이 고민하며 대화를 나누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독서 모임의 한계는 늘 ‘여기까지?’인가 싶기도 합니다. 책이 주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들과 나눈 소중한 시간을 늘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럼 또 뵙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