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미나 - 체제 이행기의 사유와 성찰
김규항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지만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사람 사는 일에 정해진 길이 있다면 누가 인생을 어렵다고 하겠는가. 통시적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 여기가 보인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절대왕정을 거쳐 신분제가 철폐되고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든 과정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진한 피냄새가 배어 있다. 원시 공산제와 고대 노예제를 거쳐 중세 봉건제를 지나 자본주의에 이르는 길에도 숱한 이들의 땀과 한숨이 스며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는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개인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 된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어깨 겯고 걸어온 길들 위에 꽃이 피었다.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이 힘겨운 현실과 험난한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김규항이 걸어 온 길, 그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자리에도 꽃이 피었을까. 오랜만에 읽는 김규항의 문장마다 힘과 결기가 느껴진다. 여전히 흔들리며 걷는 사람들 발자국마다 자본주의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의 그림자가 스친다. 고정 불변하는 체제는 없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어떻게 걸어야 하는 것일까. ‘체제 이행기’의 사유와 성찰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말해준다. 아나톨 칼레츠키가 자본주의 4.0 시대를 선언한지 10여년이 흘렀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서서 반성하는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충돌하며 대한민국 사회에도 빛과 그림자를 만든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와 복지사회의 꿈이라는 상충하는 우리들의 꿈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한 자유이며 누구를 위한 복지일까.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1867)이 출간된지 150년이 훌쩍 지났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체제, 즉 인간이 만든 사회 제도와 시스템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끊임없이 생성, 변형, 소멸의 과정을 거쳤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대로 만물이 유전하듯panta rhei,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도 세상도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생존과 적응에 매몰된 다수와 달리 조금 다른 시선으로 미래를 고민하거나 현실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학문적 관점에서든, 사익 추구를 위해서든, 인류애와 호기심 차원이든 ‘현상’을 넘어 ‘본질’에 집중하고 거시적 관점에서 변화의 흐름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주 조끔씩 바꿔왔다. 반복적 일상에 균열을 발견하는 일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의무가 삶의 태도가 아닐까.

매일 숨쉬는 공기처럼 우리는 자본주의를 호흡한다. 욕망을 들이마시고 한숨을 내뱉는다. 주식, 코인, 부동산, 취업, 노후 준비에서 환율, 경상수지, GDP까지 실물경제에 대한 관심이 곧 현대인의 삶이다. 권력은 시장에 넘어간지 오래고 자본이 정치를 지배하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오늘의 일상과 내일의 행복을 좌우하는 자본주의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18개의 주제로 펼쳐지는 세미나는 200쪽이 안 되는 이 책의 분량과 무관하게 깊고 넓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물론 케인스와 신자유주의의 명암을 찬찬히 살핀다. 우리가 간과한 것은 무엇일까. 1997년, 2008년은 모두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변화를 넘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안녕한가.

갈고 닦고 조이며 자본주의를 고쳐쓴지 오래다. 김규항의 세미나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도입하거나 혁명적 변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의도가 없다. 문제의 본질을 살피지 못하고 현상에 급급하며 체제 자체의 모순을 간과하는 태도를 성찰한다. 신축아파트에 물이 새고 벽에 금이 가는 건 시공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설계 자체의 결함이 은폐됐을 수도 있다. 또한 건축 이론과 공법이 모든 지형과 기후에 적용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시대정신을 좇으며 새로운 얼굴로 탈바꿈해온 자본주의는 우리의 미래를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구조적 모순과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대개 그러하듯 이 세미나에 참여한 독자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각 장마다 권민호의 그림이 환기 장치로 활용된다. 마지막 장에 소개된 그림과 제목이 인상적이다.

Karl Marx+Quo Vadis, 29.7×42cm, 2013

새로운 사회는 현재의 사회 안에서 자라납니다. 우리가 노쇠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바꿔 말하면 새로운 사회가 생겨나는 시기에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행기’를 살고 있습니다. 이행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일정을 갖게 될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이행기의 성격을 고려할 때, 그 주역은 선구자나 지도자와 함께하는 군중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로서 노동을 사유하는 최초의 개인들 말입니다. 유토피아는 없지만, 최소한의 사회는 있습니다. - 19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