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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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citizenship’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지혜로운 결합에 대한 고민이다. 정치는 경제에 예속된지 오래다. 경제는 정치를 지배하지만 자유와 평등을 고민하지 않는다. 공정과 정의는 민주주적 가치로 자본주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 어떤 가치가 우선이냐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지고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0년 국내 출간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정의란 무엇인가』(2009)는 시대정신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 윤리적 의미의 정의와 경제적 정의는 결이 다르다. 마이클 샌델은 근대현대 윤리학과 정치철학에 해당하는 공리지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를 둘러싼 쟁점을 짚는다. 경제민주화의 열망, 사회 윤리적 갈등이 첨예하던 시기에 저자는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15년쯤 흐른 우리의 현실, 대한민국의 ‘정의’는 안녕한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1996)의 원제는 ‘민주주의의 불만’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먼저 마이클 샌델은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톺아본다. 겨우 200여년 남짓한 미국의 짧은 역사는 그 나름의 명암이 교차한다. 맨땅에 세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국가답게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철학자의 눈에 비친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은 출발점과 너무 달라졌다. 능력주의의 환상이 심어지고 기회의 땅이라는 수식어가 오늘의 미국을 오해하게 만든 건 아닐까.

북부의 임금 노예와 남부의 흑인 노예 비교가 인상적이다. 끊임없는 가난과 불안 속에서 살았던 북부의 임금노동자는 남부의 노예보다 실제로 자유롭지 않았다. “남부의 노예는 적어도 나중에 늙고 병들 때 노예주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자본은 인간 노예주가 노예를 대하는 것보다 한층 더 강력하고 완벽하게 강제력을 행사한다. 자유노동자는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노예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노예주가 먹여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를 누리는 댓가로 얻은 현대인의 불안은 임금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인간답게 살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 즉 인권의 출발은 경제적 자유다. 마이클 샌델은 공화국 초기의 경제와 시민적 덕목을 살피고 자유노동과 임금노동의 차이를 설명한다. 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케인스의 이론은 절차적 공화주의 승리와 고난을 함께 선물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국가의 역할, 즉 정부의 시장 개입에 필요성과 적절성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한쪽에서는 자유 시장경제를 목놓아 외치면서 입맛에 따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한쪽에서는 경제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푸념을 하기 일쑤다.

더욱 놀라운 건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태도다. 사회주의를 적극 반영한 유럽선진국의 수정자본주의 국가를 부러워하면서 재벌과 기득권을 소수를 위한 정책에 박수를 보내거나 노동자, 농민들이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과 정책을 반대한다. 루쉰의 말대로 “언제나 사색하고 공부하라. 그리고 열린 눈으로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라.” 그렇지 않으면 눈뜨고 코 베인(커트 코베인 아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라고 절규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루스벨트는 ‘진정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 경제적 권리에는 ‘만족스럽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가질 권리, 적절한 음식과 옷과 여가를 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돈을 벌 권리, 모든 가족이 함께 괜찮은 주택에 살 권리,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 노령, 질병, 사고, 실업 등에 따른 경제적 두려움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을 권리 등이 포함된다고 선언했다. 즉 개개인이 자기 삶의 목적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려면 반드시 물질적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었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런 생각은 루스벨트의 1944년 마지막 국정연설 내용이다.

80년이 지난 미국은, 아니 우리는 루스벨트의 복지국가 의제를 현실로 만들었을까. 현실은커녕 의제 자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지 못한 상태다. 홉스의 만인의 투쟁 상태가 지속되는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단순한 착시 현상이 아니다. 민주적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또 현실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점검과 성찰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긴 자들의 승자독식체제가 용인되는 건 우리 사회의 작동방식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기보다 발빠른 적응과 순응적 태도 때문이다. 다수 시민들의 이기적 욕망이 충돌하고 타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능력주의에 대한 오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걸까.


이 책의 초판이 나온지 27년이 지났으나 마이클 샌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의 정치, 경제의 역사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살펴보는 데 집중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의 현실적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볼 만한 쟁점들이기 도하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듯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는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다수 국민들을 위해서 혹은 소수 기득권을 위해서 정치인과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이기적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전 국민이 화합하여 한 목소리를 내는 국론 통일은 생각만해도 끔찍한 전체주의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에 기초한다. 여러 가지 목소리와 의견이 부분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목소리들이 누구를 위하여, 어디를 향해 뱉어지는지 살필만한 안목과 통찰력은 길러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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