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삶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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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녀석은 자신을 목격한 이에게 어김없이, 그리고 단호하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 53쪽

잠시 비가 그치고 나면 사람들은 젖은 마음을 말리려 바람을 햇빛과 바람을 찾는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은 돈이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숨 쉬는 공기까지 비용을 지불한다. 여름에 시원한 바람, 겨울에 따뜻한 온기, 미세 먼지 걱정 없는 실내 공기는 공짜가 아니다.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을 나열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돈의 액수가 행복의 크기, 인생의 만족감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왕과 귀족이 다스리던 시대를 지나 부르주아가 탄생하고 ‘혁명’을 통해 공화정이 들어섰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놀랍게도 ‘개나 소나’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주권 시대, 절차상 완벽한 민주주의 시대를 살게 됐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한 현대 국가 체제를 감히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플라톤의 염려대로 대중들의 열망은 중우 정치 혹은 포퓰리즘으로 비난받고 거대한 ‘이권 카르텔’, 이를테면 법조 카르텔에 의해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장치가 무너진 과두 정치가 대한민국의 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현상은 국민 대다수가 이를 용인하며 현실을 변화시키는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계층 상승의 욕망에만 몰입한다는 사실이다. 자존심이 세지만 자존감이 낮을 때 벌어지는 우울한 현실을 우리는 매일 목도하며 산다. 지긋지긋한 ‘을’들의 전쟁 말이다.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와 정치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성격이 전혀 다른 부부처럼 오랫동안 동거 중이다. 정부가 라면값에 개입하는 건 공산주의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무상급식, 의료보험, 노인 연금 같은 모든 복지 제도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어떤 ‘이즘-ism’도 사람보다 소중한 가치일 수 없다. 무엇을 표방하는 정부든 인간다움을 잃는다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서로 다른 생각을 편견없이 수용하며 동의할 순 없어도 인정하는 태도를 잃는다면 그것이 곧 독재와 파시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본주의는 실체가 없다.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거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듬고 고쳐가는 중이다. 수정자본주의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민주적 가치를 받아들여 계속해서 변해가는 유기체와 같다. 정치, 즉 국민들의 삶과 삶의 가치에 따라 놀랄만큼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현실에 적용하기도 한다. 사회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유럽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를 부러워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쓸데없는 이념 논쟁, 이를테면 종북몰이와 수구보수 논쟁 같은 소모적 진영 논리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전임 대통령이나 과반의석을 차지한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고 전직 대통령을 간첩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공직에 임명되는 현실을 우리들의 ‘상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들에게 정권을 넘겨준 이들의 면면과 실수 또한 작금의 현실에 버금가는 부피와 무게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어느 쪽이든 거대한 이권 카르텔, 기득권에 의한 과두 정치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알고도 외면하는 것일까. 총선과 대선마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 보자. 세상을 흑백논리로 구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다른 대안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임승수는 페미니스트 아내와 함께 행복한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향상 개인적인 이야기, 내밀한 고백은 대체로 불편하다. 소설가와 시인은 작품으로, 논픽션 작가들은 이성의 사유로 기능할 뿐이다. 개인으로서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은 건 내 성향일 수 있으나 적어도 책을 통해 만나는 그들을 굳이 현실적 개인으로서 그 면면을 살피고 싶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로 사는 임승수의 생활이 궁금해 책장을 넘겼다.

글을 쓰고 강의하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고, 명문대 공대 출신으로 안락하고 일반적인 삶을 거부한 사람의 행복과 자유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과격하고 폭력적인 ‘혁명’과 ‘전쟁’을 떠올리지 않고 냉정하게 사회주의를 들여다 본 적이 있이 있을까.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같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빌려올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상관없는게 아닌가. 수많은 ~~주의 너머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먼저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인류 문명에 끼친 빛과 그림자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한 적은 없다. 합의는 절망과 체념이 아니라 배려와 양보다. 니체의 말대로 사실보다 결국 해석의 문제일 뿐이다. 이 책은 임승수 개인의 일상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과 다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한숨이다. 내게는 임승수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상식주의자’로 보인다. 제2, 제3의 더 많은 임승수가 나타나기를, 더 많은 사람이 ‘상식주의자’로 변해가기를 희망한다. 바꿀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이 주어졌으나 스스로 외면한채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하려는 이기적 욕망들이 현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아무도 당신의, 아니 나의 삶을 바꿔주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내가 바뀌면 된다는 적응적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해야 답답하고 느리지만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그 시작은 생각과 태도의 변화로부터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기심만 가득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초래하는 공동체성 파괴와 인간 소외 현상을 마치 본성의 산물인 양 호도한다. 그런 언동이 인민을 착취하는 한 줌 지배 계급의 행동에 면죄부를 준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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