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 사회심리학으로 본 편견의 뿌리
고든 올포트 지음, 석기용 옮김 / 교양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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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중립과 객관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판단과 선택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장 합리적 선택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에 따라 자기 선택을 평가한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신중하게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려는 ‘태도’는 삶의 모든 장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인생은 결국 그 선택의 총체적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듣고 보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지 못하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몰라서 저질렀던 실수와 달리 알면서 반복하는 말과 행동은 한 인간의 됨됨이를 결정한다.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자신을 합리화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자기 성장을 통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지 못하면 타인과의 비교, 경쟁에서 이겨야 성공한 삶이라고 착각한다. 이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잣대로 기능한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심리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고든 올포트의 『편견The Nature of Prejudice, 1954』은 편견의 뿌리를 파헤친다. 언제나 그렇듯 당대의 문제를 반영한 역작들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혜안을 제공한다.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의 가장 큰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무지개처럼 어울려 저마다 다른 빛깔로 조화를 이루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기득권을 거머쥔 계층과 계급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혁명을 꿈꾸는 자들의 의지보다 굳세다. 백인과 흑인은 단순히 피부색의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종 차별의 역사를 극복해온 과정이 인류의 문명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 장애인, LGBT 등 현대판 흑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우리에게 ‘편견’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 전에 개인의 심리 문제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은 모든 나라에서 모든 세대에 걸쳐 존재해 왔으며 편견은 사실상 심리 문제에 해당한다고 분석한다. 도덕적 분노가 어느 정도 유발되느냐 하는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부정적 행동의 강도는 ‘1. 적대적인 말antilocution 2. 회피avoidance 3. 차별discrimination 4. 물리적 공격physical attack 5. 절멸extermination’의 순서로 전개된다. 편견을 구성하는 두 가지 기본 요소는 ‘잘못된 일반화와 적개심’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기인한 적개심과 분노는 단단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하고 간접 경험과 관찰의 결과를 토대로 위험을 회피하고 생존했던 습관은 공정한 세상, 민주적 태도와 거리가 멀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습성을 옹호하고 무엇이든 힘들게 얻을 것을 내놓기 싫어하는 손실회피 경향을 가진 인간의 공동체 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누구든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전제로 정책을 입안하고 법률을 입안하며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 삼권 분립은 이상일 뿐이며 가정과 직장 혹은 어떤 조직이든 자기 이익에 충실한 욕망을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속성에 해당하는 편견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지닌다. 생존을 위해 위험을 외피하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진화생물학적 습성이 기인했을 수도 있다는 온갖 실험과 본능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배우고 익히며 세상을 살아가고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믿고 있지 않은가. 자유, 평화, 평등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인류가 흘린 피와 땀을 떠올리면 폭력과 절멸 전 단계에 해당하는 편견과의 싸움이 왜 현재진행형인지 깨닫게 된다. 나 혹은 우리와 달라 품게되는 적개심 그로 인한 회피와 단절은 일상에서도 반복된다. 그것이 개인의 평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있으나 타인과 사회를 향한 태도, 즉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순간 ‘문제’가 된다. 주변을 돌아보라, 정답을 말하는 사람과 나만 옳은 사람과 해봐서 안다는 사람과 누구보다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편견의 반대편에 놓은 소중한 가치가 관용이다. 관용적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 ‘사회적 지능’,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할 수도 있고, 풍부한 의미가 담긴 독일어 단어를 빌리자면 ‘인간 이해Menschenkenntnis’라고 할 수도 있는 태도가 바로 관용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의 심리 역동을 살피고 역사, 사회문화적 요소들을 점검하며 편견과 차별의 뿌리와 작동방식은 물론 그 해결방법까지 제안하는 과정은 놀랍다.

개인은 물론 사회 공동체가 발전하는 과정에는 이렇게 꾸준하고 진지한 고민이 디딤돌 역할을 한다. 어느 방향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논의하는 시간이 절실하다. 대증요법으로 던지는 정치인들의 생각없는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함께 읽고 생각하며 신중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편견을 바로잡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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