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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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법은 모든 이법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의 법’으로서 새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상태도 되돌려야 하는 것이다. 그 궁극적 토대는 루소처럼 ‘사회계약’이라는 인간 사이의 합의가 아니라 신의 지혜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완벽한 종교적 실현은 기독교에 의해 가능하다. 정치적 자유는 오직 법 이후에 존재하며 오직 법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는 주장은 프랑스 혁명 이전 중세적 가치관의 끝물에 놓인 금수저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볼테르는 몽테스키외보다 다섯 살 연하고, 디드로와 루소는 23~24년 후에 태어났으니 완전히 다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단초를 제공했을 『사회계약론』과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비교할 수 없으나 사회를 보는 관점과 태도의 차이는 분명하며 법과 사회의 관계 설정도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법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성과 실정법 사이의 간격을 이해한다는 주장이다. 개별적 존재로서 기능하는 다양한 개체들 사이의 합의된 질서와 규칙을 법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실정법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와 태도와 달리 자연법과 만민법은 공화정(귀족정과 민주정을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 군주정, 전제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는데 몽테스키외는 이 책에서 그 정체들 사이의 차이와 적용의 문제를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로마는 처음에 혼합된 귀족정체였다가 혼합된 민주정체로 바뀌고 영국의 정체는 공화국의 성격을 상당히 지는 ‘혼합형 군주정체’다. 몽테스키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 방법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중도 군주제 형태를 띤 프랑스의 현실 정체와 유럽의 현실을 비교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관찰하며 그 차이와 혼용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정치법과 종교법 그리고 정체에 따른 법의 의미를 분석한다. 전제정치(두려움)는 귀족적 전제정치와 국민적 전제정체로, 군주정체(명예)는 귀족정체와 민주정체로 나눌 수 있다. 공화정(덕성)은 이런 요소들이 뒤섞여 나타날 수도 있다. 몽테스키외는 미래를 예측하거나 더 나은 정체를 제안하는 대신 각 정체의 특징과 법의 역할을 설명하는데 치중한다. 물론 자유와 이성이 작동하는 범위와 한계, 그것이 제한받을 때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재미있는 주장 중 하나는 풍토이론이다. 유럽과 아시아 더운 지역과 추운 지역을 대비시켜 과학적 결정론이라기보다 운명론에 가까운 자의적 주장은 위험해 보인다. 물론 당대에 이와 유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몽테스키외도 샤르댕의 《여행기》를 인용하며 자기 생각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결정론이라기 보다는 입법자들이 이러한 풍토에 맞서 효과적으로 법을 제정,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법의 정신은 풍토에 대한 혹은 일반적으로 물질적 원인에 대한 도덕의 승리여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입법권과 집행권 그리고 사법권의 분리 이론은 이 책의 핵심 사상이다. 권력은 절제되고 중단될 수 있어야 하며 당연히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으로 작동한다. 권력 분립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핵심 중 하나다. 1789년 인권선언문 16조, “인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거나 권력이 분리되지 않는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않다.”라는 선언은 대한민국의 짧은 정치사와 오늘의 현실을 성찰하게 한다. 국민의 대표인 입법기관을 존중하지 않는 집행권자 대통령, 집행자들에게 영향을 받아 사법농단을 일으킨 판사들, 독립성을 상실한 입법권자들의 행태를 우리는 매일 목도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따질 것 없이 진영 논리에 매몰되거나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만 날고기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정체를 의심케 한다. 몽테스키외가 주장한 대로 삼권 분립의 균형과 견제가 이뤄진다면 적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겠으나 비대한 대통령의 권한과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입법권과 사법권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

해설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몽테스키외를 사회학의 선구자로, 프랑스혁명의 선구자로, 자유주의의 선구자로 내세우는 것은 너무 성급한 해석이다.” 쓸데없이 덧붙여진 과장된 의미 부여와 지나치게 부풀려진 오독이 때때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낳는다. 이는 아마도 몽테스키외가 전하고 싶은 생각과 주장이 방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수도 없이 시작했고, 수도 없이 포기했다.”고 고백하며 “20년 동안 나는 내 책이 시작하고, 커지고, 앞으로 나가고, 끝나는 것을 보았다.”고 설명한다. 이 지난한 시간 동안 유럽을 여행하고 세상을 경험하며 생각이 바뀌고 사회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물론 법이 갖는 역할과 의미도 일관성있게 유지될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이다. 전체 6부 31편으로 구성돼 있지만 내용은 1~13편(1~2부), 14~25편(3~5부), 26~31편(6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각각 구체적인 내용과 구성을 살피는 건 내 관심사가 아니나 다소 복잡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면이 있으나 정치 체제에 따른 사회의 특징과 법의 의미를 살피려는 노력, 삼권 분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논리적 주장, 당대 사회를 토대로 종교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법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 결과는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생각의 화두를 삼기에 충분해 보인다.

몽테스키외(1689~1755)는 16세인 1715년 백부의 고등법원 판사직을 세습한다. 배타적 특권 계층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계급적 지위와 기독교적 윤리에 바탕을 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1748년 60세가 되어 펴낸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아니라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이라는 세가지 정치체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과 사유의 결과를 당대 현실에 맞춰 서술하고 있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공화국은 ‘덕성이 필요하고, 군주국에는 ‘명예’가, 전제국에는 ‘두려움이’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이제 민주주의가 인류의 대세로 자리잡았으나 그 정체와 무관하게 인간과 사회, 그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은 오늘 우리가 가진 법의 정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연법, 만민법, 정치법, 종교법, 실정법 등 몽테스키외가 분류한 법들의 종류와 특징, 그 법들 사이의 논리적 모순과 현실 적용 문제를 적용하려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또한 법은 만들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것도 아니다. 시민들의 생각과 태도가 반영된 철학적 고민의 결과다. 정치 체제와 법의 정신은 바로 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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