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문예 인문클래식
루돌프 폰 예링 지음, 박홍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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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로 상징되는 ‘불멸의 신성가족’(김두식)은 이제 정치 권력의 정점에 섰다.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당들이 또다시 헤게모니를 거머쥔 채 경찰, 검찰, 사학은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위태롭게 한다. 이념과 진영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현실은 그들만의 리그에 편입된 지 오래지만 언론과 대중은 비판적 안목없이 현실의 문제와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생존 경쟁에 매몰된다.

21세기에 들어 한국에서 전통적인 암기식 수험 중심의 법학을 타계하기 위해 학제적 방법을 통한 사회 현실의 인식과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로스쿨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예링이 지적한 대로 기계법학의 폐단은 여전하다. 거대한 고시학원으로 변질된 로스쿨은 한국의 수험법학 혹은 보수법학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너무 고급일지 모르지만, 그런 천박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예링의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박홍규의 맺음말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히 설명된다.

“19세기 사람 예링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이따위의 현실, 즉 수사와 재판이 판검사와의 연줄이나 권력과의 관계로 움직이는 이 더러운 현실에서는 그런 연줄이나 뒷배가 있는 사람들만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소송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정의를 지키는 법이니 재판이니 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그런 자들을 위한 헛소리에 그칠 것이다.” 판검사는 ‘권력을 위한 투쟁’을, 변호사는 ‘고수입을 위한 투쟁’을, 로스쿨 학생들은 ‘출세를 위한 투쟁’을 가열차게 멈추지 않는 현실에서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은 가능할까. 아니, 시민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면 법은 ‘법치주의’를 외치며 밥그릇을 챙기는 자들의 몫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예링의 지적이 오늘 우리 현실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1872년 빈 대학을 떠나며 강연한 내용이 근간이 되어 출판된 이 책은 Recht, 법 혹은 권리가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보수적인 개념법학에 대한 비판으로 써 내려간 짧은 글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경찰과 검찰 혹은 변호사의 면면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법과 권리’를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와 관점으로 바뀐다. 절대, 기득권을 내려놓거나 내부적인 변화와 개혁을 기다리는 헛된 꿈을 꾸지 말라. ‘투쟁에서 너의 법과 권리를 찾아라’는 예링의 모토는 시대와 상황과 무관한 삶의 태도와 방법으로 읽힌다.

예링은 “법과 권리의 목적은 평화이고, 평화에 이르는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선언한다. 이 단호한 문장에 숨은 역설과 함의는 일반 시민들을 향한 가장 중요한 조언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 자신의 의무이며 이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질서와 법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은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법학을 현실로 끌어내려 인간의 권리감각을 일깨우고 법의 존재 이유와 현실적인 문제해결의 단초가 된다. 국가공동체의 의무의 기본이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지적은 로마법에 근간을 이루는 시대정신의 재해석이다.

단순 명료한 주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셰익스피어의 샤일록을 등장시켜 유대인의 편견과 재판관의 결정을 비판하는 대신 법이 추구하는 목적과 방향을 다시 점검한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합의에 따라 법은 계속해서 신설, 개정, 폐지된다. 법은 선악의 문제를 다루지 않으며 인간의 권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250여 년 전 예링의 생각이 여전히 상식으로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너무 늦지 않게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소송 만능주의, 재판 제일주의로 예링을 오독하는 하는 사람은 없겠으나 21세기 법기술자들이 판치는 세상은 예링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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