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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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었다. 소설을 읽고 표지 그림을 찾아봤다. 화가 우지현은 그림에 관한 에세이를 쓴 작가이기기도 하다. <그리운 것들은 당신 뒤에 있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렸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확인했다. 영화 「셜레 관한 모든 것」 포스터처럼 현대인의 고독에 침잠했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Morning, 1952」이 언뜻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지현의 「어느 밤」은 로리스 레싱이 표현하고 싶은 단편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데 성공했는지 알 수 없다. 주인공 수전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소설에 묘사된 호텔을 시각화하는데 몰입했다는 이 그림은 의미가 퇴색했을 터. 창밖에 지는 석양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매슈의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러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응시하는 뒷모습이 쓸쓸하지만 무기력해 보이지는 않는다.

유명 화가의 그림을 표지로 활용하는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들과 달리 소설에 맞는 그림을 의뢰해서 책을 만든 출판사의 노고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리운 것들을 모두 뒤에 남겨진 시간 안에서만 머문다는 우지현의 그림 주제도 좋다. 물론 수전은 지난 세월을 추억하거나 그리움 때문에 눈물짓는 여성은 아니다. 어쩌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해결할 수 없는 평범한 여성의 경력단절, 육아와 자아의 충돌, 평온한 삶이 주는 권태, 무료한 인생의 지루함을 프레드 호텔 19호실에서 달랜 건 아니었을까.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에겐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선언한 건 근대적 여성의 조건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물질적 토대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주체적 삶의 태도는 현대인에게도 삶의 필수 조건이다. 매슈와 결혼, 출산과 육아로 행복의 외적 조건은 갖추었으나 교외의 저택과 경제적 풍요가 수전에게 삶의 전부일 수는 없었다. 사랑이 식어버린 관계를 탓할 수만도 없다. 도리스 레싱이 단편 「19호실에 가다」를 통해 보여주려던 여성의 모습은 인간 일반으로 확대할 수 있다. 물론 수전이 처한 삶의 조건이 아니라면 19호실이 필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남편 매슈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19호실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누구든 19호실은 필요하다.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하는 시간, 삶의 이유를 묻고 자기를 들여다보는 공간,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동굴.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걸 공유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은 욕망이 불러올 부작용과 비극은 경험을 통해서만 배우게 된다는 아이러니.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는 건, 양심과 죄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오해와 불신이 쌓인다. 매슈와 수전이 공유하는 삶, 사랑하는 방식은 어쩌면 19호실과 무관하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19호실이 필요한 이유는 너무 많다.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여성의 일탈이 아니라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라는 첫 문장처럼 감상적 태도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중간에 같은 문장이 세 번 반복된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304쪽)가 그것이다. 남편과 세 아이의 엄마도 혼자다. 그녀는 혼자였고 여전히 혼자다. 그래서 “사실 그 방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야.”(328쪽)라는 고백이 가능하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와 외면이 한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개인적인 성향과 용기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괜찮으냐고, 그렇게 살아도 행복하냐고 그리고 당신만의 19호실은 어디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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