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와 여우 -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하여
이사야 벌린 지음, 강주헌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이야기 본능은 강력해서 웬만해선 막을 수 없다. 상대방의 관심과 무관하게 쏟아내는 자기 고백은 감정의 배설에 가깝다. 뜨거워진 휴대폰을 귀에 대고 들어야 하는 친구의 연애사 혹은 친정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말하고 싶은 만큼 상대방이 듣고 싶지 않은 욕망이 비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관계 양상과 성향에 따라 이야기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주변에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주변에 원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일상에서 매일 벌어지는 개인차의 비극이다. 4가지 유형의 혈액형으로 80억 명을 분류하는 오류보다 조금 나은 방법이 16가지 유형으로 나눈 MBTI 테스트다.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관계의 기본은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은 눈이 아니라 귀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도 없고 관계를 유지할 수도 없다.

놀랍게도 이사야 벌린은 인류를 단 2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를 소환한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을 알고 있다”라는 말은 흑백 논리의 전형이다. 당신은 여우인가, 고슴도치인가. 마치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서 전짓불의 공포에 짓눌린 박준과 같은 질문이다. 질문자의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어느 편인지에 대한 말 한마디가 생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질문을 가장한 억압과 강제는 박준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물론 이사야 벌린이 톨스토이를 둘 중 하나로 분류하고 이를 논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고슴도치 혹은 여우로 나눌 수 없다. 마치 붉게 물든 석양의 하늘처럼 모든 인간은 농도의 차이만 확인할 수 있는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 있다.

일원론자인 고슴도치형은 지식인과 예술가 성향으로 도스토예프스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에 관련시키는 사람을 고슴도치형이라 한다. 여우형은 다원론자로 푸슈킨 같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로 모순되더라도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거대한 서평을 이렇게 다채로운 해석과 분석으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이사야 벌린은 작가의 내면과 삶의 궤적을 꼼꼼하게 살핀다. 그래서 결론은? 톨스토이는 고슴도치인가, 여우인가. 그게 중요한가?

소설은 개연성 있는 허구로 삶의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해서 핍진성이 부족한 소설이 주는 재미와 장르 소설이 가진 허구와 상상의 즐거움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전으로 남아 인간과 생의 이면을 성찰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비평과 해석의 필요하기도 하다. 가벼운 분량이지만 결코 만만찮은 톨스토이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톨스토이의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가 읽는 모든 글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읽고 쓰는 행위는 저마다 다른 의미다. 치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뜬 사람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자기 삶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한다. 모든 읽기는 쓰기를 위한 전제이고, 모든 쓰기는 읽기가 바탕이 된 자기표현이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열려 있지 않다면, 타인과 세상의 소리를 경청할 수 없고 자신의 망막에 투영된 세계가 전부라고 믿을 수도 있다. 쉼 없는 의심과 질문이 자기 성찰과 내일의 변화를 위한 성장을 이끈다.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거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말의 무게는 때때로 감정에 휘둘린다. 논리적 근거보다 중요한 게 태도이며, 합리적 생각보다 감정이 앞서는 게 인간이 지닌 한계라는 사실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수 없지 않은가. 결국 톨스토이는 고슴도치 같은 여우가 여우 같은 고슴도치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했던 게 아닐까.

톨스토이의 현실 감각은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나 통렬해서, 뛰어난 두뇌로 세상을 잘게 쪼개 얻어낸 단위들에서 재조립해낸 어떤 도덕적 이상과도 양립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이런 사실을 부인하는 데 평생 동안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지독히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자기 증오에 시달렸고, 박식하면서도 모든 것을 의심했으며, 냉정하면서도 넘치도록 열정적이었고, 남을 경멸하면서도 자기비하가 심했으며, 심한 고뇌에 시달리면서도 초연했고, 가족과 헌신적인 추종자들에서 사랑받고 온 문명 세계에서 찬사를 받았지만 거의 언제나 홀로였던 톨스토이는 위대한 작가 중에서 가장 애초로운 사람이었고, 콜로누스에서 눈을 가린 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해 자포자기한 노인이었다. -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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