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2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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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까지 정리한 이진숙의 101 두 번째 책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에는 34명의 화가가 등장한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에 해당하는 시기다. 산업혁명과 공화정이 자리를 잡는 혼돈의 카오스를 기억하는 일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프랑스의 벨 에포크는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라 상처가 아무는 시간이었고 야만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 폭풍 전야 같은 시대가 아니었을까. 예술은 언제나 대중들의 기호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한 것은 아니다. 시대의 부름에 호응하기도 하고 부와 권력에 기생하기도 했으며 예술가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대중의 관심과 호응, 찬사와 인정이 없었다면 대개의 예술은 존재 가치를 의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근대 이후 개인의 발견과 ‘좋은 삶’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던 시대의 미술은 신분 사회가 무너지고 개인을 바라보는 안목과 태도 자체에 균열이 시작되었음을 예감했다. 그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림에 대한 서로 다른 논쟁, 이전 시대 예술에 대한 저항, 화가의 개성과 성취를 드러내려는 노력, 시대를 반영하려는 열망이 혼재되어 풍성하고 다양한 그림이 쏟아진다. 바르비종, 인상주의, 아르누보, 야수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등 형식 실험이 이어지고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은 그 시기를 단축하며 무지개처럼 고유한 빛깔을 드러내는 화가들이 등장했다.

이 혼란의 시기에 ‘좋은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로 인해 근대는 더욱 더 자기 삶에 대한 성찰하고 시대를 인식하는 개인이 탄생한다. 근대사회는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individual의 시대였다. 시민혁명과 초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은 개인의 고독과 불안을 증폭시킨다. 자유롭지만 고독한 존재의 탄생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불안이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정해야 하는 막막한 개인들의 좌충우돌이 시작됐다. 모든 인간은 자유와 평등을 부여받았으나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목표와 삶의 방향을 찾는 대신 각자도생과 생존 전략에 급급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힘들다. 그대도 우리는 ‘좋은 삶’을 위해 고민하며 주변을 살피고(사회), 과거를 돌아보며(역사), 삶의 태도와 방법을(철학) 묻는다. 때로는 미술관에서 위로를 받고(예술), 밥벌이의 지겨움을 호소하며(경제), 현실 밖의 세상에서 머문다.(문학)

19세기 말 예술가들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 고독과 불안이라는 낯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어나는 순간 삶의 길이 정해져 있던 시대는 행복했을까. 아니 자유에 매겨진 세금처럼 지불해야 하는 대가치고는 ‘개인’이 감당해야할 책임이 너무 크다. 사회적 계층 구조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도 개인의 몫이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세상이니 너의 선택일 뿐이라는 말도 무책임하고, 성공하지 못한 삶은 오직 너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시선도 억울하다. 불과 200여 년 동안 인류는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앞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매우 더딘 속도로 적응하거나 낙오하거나 과거로 회귀하며 파편화된 개인들의 시대가 펼쳐졌다.

벨 에포크 시대의 에곤 실레는 비극적 죽음으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완성했다. 그러나 영원한 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도록 에곤 실레를 떠나보내고 전쟁터로 떠나 스물 셋의 나이에 죽음을 맞은 발리의 극적인 삶이 더 예술을 닮았다. 현실 자체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기 시작한 것도 근대 이후가 아닐까 싶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은 없다. 유파와 시대를 넘나들며 예술을 주도했던 화가들과 나름의 빛깔과 향기로 빛나는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는 동안 세기말의 우울, 격변기의 혼란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계가 사라진 시대의 막막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테 바브리엘 로세티의 <페르세포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 일리야 레핀의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쇠라, 세잔, 뭉크, 고흐, 딕스, 말레비치, 몬드리안... 그림으로 살펴보는 인류의 역사는 빅히스토리처럼 문학과 사회는 물론 철학, 문화, 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오늘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진숙은 그 씨줄과 날줄을 정교하게 직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데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와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사유의 힘이야말로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는 지름길이다. 저자의 노고와 성실함이 빚어낸 그림 이야기는 매우 훌륭한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개인’의 등장은 곧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의 등장을 의미했다. 개인은 스스로 존재 의미를 찾아 욕망의 시험대 위에 오르고,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세상에 부유하다 파멸한다. 그 과정에서 로댕식의 ‘욕망’, 뭉크식의 ‘불안’ 그리고 브루벨식의 ‘절망’을 주제로 한 예술이 탄생했다. - 4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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