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하여 - 아무도 말하지 않은 인생의 다른 이름
베벌리 클락 지음, 서미나 옮김 / 현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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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결심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좌절과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매일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가 뗄 수 없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인생은 마치 제로섬 게임 같아서 어느 쪽에 몰입하면 다른 부분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양손에 떡을 움켜쥐면 타인에게 손을 내밀기 어렵다. 잃어야 얻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삶의 지혜를 몰라서 지옥을 경험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능력이 있고, 경험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습성이 있다. 이론과 실제가 달라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보지 않는 감정은 혼란스럽다. 거울에 비치는 사물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남의 일같이 보이던 실패와 상실은 어느새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익숙함은 실패한 사랑의 주연이 되기 쉽다. 실패를 통해 시행착오의 교훈을 얻고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대개 인간은 귀인이론의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인과관계가 없는 대상이나 원인을 지목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고 상황을 외면하거나 회피함으로써 정신승리를 택한다. 상처는 쉽게 아물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우리에겐 리셋 버튼이 없다. 초기화 기능 없는 인간에게 실패와 상실은 익숙해지지 않는 삶의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은 마음이라는 데, 베벌리 클락은 “상실과 실패의 순간에 우리는 존재의 본질과 마주한다. 이 경험으로 진정 중요한 것에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 틸리히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통스러운 경험이 없다면 삶의 표면만 건드린 채, 인간의 피상적 의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그의 표현은 시적인 느낌마저 든다.”라고 어깨를 다독인다. 꺾이지 않는 마음만 있으면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철학적 위로는 달콤한 감정적 격려, 대책 없는 희망, 무기력한 긍정과 어떻게 다른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실패의 본질과 의미뿐만 아니라 실패의 속성과 과정을 살핀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두 번째 기회를 얻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다. 흔히 말하는 회복 탄력성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 쉽다. 사회 안전망이 견고한 사회에서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야 하지 않겠는가.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공동체의 울타리는 개인이 가진 의지 혹은 신념의 단단한 버팀목이다.

현실적인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대체 불가한 성별(여성혐오), 나이(노인 빈곤), 학력(임금 격차), 종교(대체 군복무), 출신(지역 차별) 등에 기인한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빈부 격차(육아, 출산, 수월성 교육, 입시 제도, 사교육비, 대학 서열)는 개인의 노력이나 열정과 무관하지 않은가. 모든 게 다 노무현 탓이라던 한 시대의 비극적 유행어를 뒤집어보면 모든 게 다 정치 탓이라는 은유가 성립한다. 우리는 ‘기득권’을 재해석하는 놀라운 리더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했다. 여기에 동참하며 호응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밥그릇을 빼앗는 사람들의 의도와 무관하다. 무지는 참담한 현실을 초래하고 무의식적 분노와 감정적 혐오가 불러올 파장은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 공동체의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베벌리 클락의 초점은 주로 개인에게 맞춰져 있으나 여성, 죽음, 불안의 문제는 철저하게 삶의 조건들, 즉 공동체의 태도와 환경에 기인한다. 성공에 대한 욕망,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우선 ‘좋은 삶’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좋을 삶을 실현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좋은 삶은 철저한 경쟁과 승자독식 자본주의다. 시장에게 자유를 허하라는 말에 동조하는 90퍼센트 가난한 국민들의 태도가 놀라운 건 무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10퍼센트가 될 수 있다는 욕망 때문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가학적 시장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이미 시장이 정치를 지배한 지 오래지만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 없는 한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는 철학자의 조언은 이념과 무관하지 않은가.

좋은 삶의 대척점에 놓인 경고는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원리가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삶의 불확실성이 오로지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진다. 저자는 좋은 삶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묻는다. 타인과 세계와 연결된 삶을 위해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 새로운 관계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상실이 생긴다. 삶을 쉽게 통과할 방법은 없다고 단언하는 이 책의 미덕은 멈출 때 삶이 공간이 생기고, 지금-여기에서 열정을 다하며, 걷는 행위를 통해 다르게 사는 법을 익히라는 충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상실이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과 동행이라는 조언이다.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고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 좋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새로운 관점의 출발이다. 실패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우선 나와 타인의 관계 그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감정적 태도를 버려야 다른 삶, 보다 좋은 삶을 위한 고민이 시작되리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에서 아무도 실패와 상실을 피하지는 못한다. 우주는 우연과 변화, 성과 쇠, 성장과 부패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인간은 이것의 일부다. 삶은 필연적으로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오르막과 내리막, 성공과 실패를 모두 담고 있다. -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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