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 타자윤리학
김연숙 지음 / 인간사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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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의 전통은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선, 빛, 능동성, 형상, 완전성 등에 긍정적 시선을 보냈다. 반대 항에 놓인 감성, 악, 어둠, 수동성, 질료, 불완전성 등은 지양한다. 근대의 인식론적 패러다임도 주체/객체, 이성/감성, 정신/물질의 이분법은 지속된다. 고대의 존재론적 이분법이나 최근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이분법은 이성에 우월한 가치를 부여한다. 플라톤에게 감성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몸은 영혼의 감옥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념을 이성에 의한 조정과 통제의 대상으로 평가했다. 현대인은 이러한 사유의 틀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학기술 중심의 교육체계는 물론 인문, 사회 분야도 ‘과학’을 붙여야 마땅한 대접을 받는다. 신 중심 사회에서 이성 중심 사회로의 이동은 인류를 이성적 존재로 거듭나게 했으며 야만에서 문명사회로 나아가게 했다. 그러나 숱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주체 중심의 존재론은 윤리학에 치명적 약점을 초래했다. 이 지점에서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은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반기를 든다.

“감성의 주체를 강조하는 레비나스의 윤리학을 감성의 윤리학, 타인의 호소에 귀기울이는 타자의 윤리학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김연숙의 평가는 이 시대의 윤리학을 다시 점검하게 한다. 자아와 타자의 윤리적 관계는 무식해서 용감한 누구 말마따나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적용될 수 없다. 대개 윤리학은 비대칭을 전제되기 때문이다. 타자의 불행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있어 인간의 몸과 감성 측면에 주목한 레비나스는 몸적 존재로서 타인의 호소와 요청에 노출된 존재론적 자아의 윤리에 대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김연숙은 사르트르의 적대적 타인관을 비판하며 “도덕성(la conscience morale)은 이성적인 의지나 이성적인 자유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고 이웃을 환대하는 태도, 이웃의 삶을 나의 삶보다 더 중시하면서 이웃을 환대(hospitalité)하는 태도 속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레비나스는 자유를 자율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도덕적 자유는 타자의 타자성(altérité du l'autre)에 정향되어져야만 한다.”라고 정리한다. 타자의 타자성에 정향되지 않는 도덕적 자유는 심하게 말하면 현대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저지르는 범죄에 해당한다. 기울어진 저울에 균형점은 수학적 평균일 수 없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윤리학은 정치와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공동체가 유지되는 도덕 규범조차 뿌리채 흔든다. 아니, 타자윤리학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타자는 타인과 다르다.

타자―

(외재성)

환경적 물질의 세계

대상화 가능, 자기화의 영역―향유의 관계

타인

열망과 초월의 대상―형이상학적‧윤리적 관계.

자아 안으로 동일시할 수 없는 무한성을 내포함

열망과 초월의 대상이지만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나타남

기후, 환경 문제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며 인구 80억 시대를 열었다. 주기적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전 세계적 팬데믹과 그 후유증은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위협으로 작용한다. 정치인들의 부작위는 범죄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실정법을 위반하는 자들보다 더 위험하다. 구체적인 호명, 수많은 비명과 아우성을 듣지 못하는 무능이야말로 이 시대의 패륜이다.

욕구와 고통은 완화될 수 없고 만족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열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욕구를 인간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자아 혹은 사회는 지속 불가능하다. 가족 이기주의 너머에 놓인 불행을 외면하는 자아의 행복은 불가능하다. 레비나스는 자아와 타자를 연결해주는 것이 ‘초월’이라고 했다. 형이상학적 타자성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초월에로의 이행, 절대적으로 다른 타자에로 향해가는 움직임, 이행이다. 레비나스는 이같은 초월의 운동이야말로 형이상학적 관계, 윤리적 관계라고 말한다. 너와 나의 배타적 친밀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타자에 대한 윤리적 응답, 도덕적 책임은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된다. 이 같은 점에서 레비나스는 “제대로 질서 잡힌 정의는 타자와 더불어 시작한다(la justice bien ordonnée commence par autrui)”라 말한다.

서양철학의 전통을 넘어선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은 동양 윤리와 닿는 면이 많다. 이 책은 그린비 출판사에서 ‘레비나스 선집’(전6권)이 나오기 17년 전인 2001년에 출간된 책이다. 연구자의 꼼꼼한 해설과 원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당대 철학적 사유, 서양 철학과의 비교 등 공시적, 통시적 측면에서 레비나의 사상과 타자윤리학을 치우침 없이 소개하고 분석하고 있다. 자본에 종속된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간과한 점이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모든 철학적 사유와 사회학의 논의가 그러하듯 “그래서 어쩌라고?”와 같은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언제나 그것이 궁금하다.

타자윤리에서 열망은 유한한 자아가 무한한 존재의 타자를 대하는 방법이다. 타자를 열망하는 태도는 타자를 자기 안으로 통합시키거나 자기화하는 작용이 아니라 타자를 향하여 자기 자신을 열어 젖히고 헌신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열망과 초월은 자아의 열림, 개시, 내 집의 현관문을 열어주고 타자를 환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타자에게로 열려진 문, 그것은 타자에 대한 초월적 열망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것은 타자와의 충만한 관계,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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