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환경 문제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며 인구 80억 시대를 열었다. 주기적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전 세계적 팬데믹과 그 후유증은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위협으로 작용한다. 정치인들의 부작위는 범죄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실정법을 위반하는 자들보다 더 위험하다. 구체적인 호명, 수많은 비명과 아우성을 듣지 못하는 무능이야말로 이 시대의 패륜이다.
욕구와 고통은 완화될 수 없고 만족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열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욕구를 인간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자아 혹은 사회는 지속 불가능하다. 가족 이기주의 너머에 놓인 불행을 외면하는 자아의 행복은 불가능하다. 레비나스는 자아와 타자를 연결해주는 것이 ‘초월’이라고 했다. 형이상학적 타자성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초월에로의 이행, 절대적으로 다른 타자에로 향해가는 움직임, 이행이다. 레비나스는 이같은 초월의 운동이야말로 형이상학적 관계, 윤리적 관계라고 말한다. 너와 나의 배타적 친밀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타자에 대한 윤리적 응답, 도덕적 책임은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된다. 이 같은 점에서 레비나스는 “제대로 질서 잡힌 정의는 타자와 더불어 시작한다(la justice bien ordonnée commence par autrui)”라 말한다.
서양철학의 전통을 넘어선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은 동양 윤리와 닿는 면이 많다. 이 책은 그린비 출판사에서 ‘레비나스 선집’(전6권)이 나오기 17년 전인 2001년에 출간된 책이다. 연구자의 꼼꼼한 해설과 원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당대 철학적 사유, 서양 철학과의 비교 등 공시적, 통시적 측면에서 레비나의 사상과 타자윤리학을 치우침 없이 소개하고 분석하고 있다. 자본에 종속된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간과한 점이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모든 철학적 사유와 사회학의 논의가 그러하듯 “그래서 어쩌라고?”와 같은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언제나 그것이 궁금하다.
타자윤리에서 열망은 유한한 자아가 무한한 존재의 타자를 대하는 방법이다. 타자를 열망하는 태도는 타자를 자기 안으로 통합시키거나 자기화하는 작용이 아니라 타자를 향하여 자기 자신을 열어 젖히고 헌신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열망과 초월은 자아의 열림, 개시, 내 집의 현관문을 열어주고 타자를 환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타자에게로 열려진 문, 그것은 타자에 대한 초월적 열망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것은 타자와의 충만한 관계,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 2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