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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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귀 닫고 살기도 쉽지 않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정도는 안다. 한 사람이 잘 못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사람이 보고 들은 걸 부정하고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무오류성의 덫에 걸린 종교의 역사만큼 특정 집단과 리더의 자기 부정은 그것이 통용될 수 있었던 과거와 조직 문화, 여전히 굳건한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본능적 자기방어 기제를 넘어선 왜곡은 단순한 이기적 처세술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과 태도는 가릴 수 없다. 학력과 직업, 시험과 자격증이 공부의 전부라는 착각이 우리 사회의 민낯을 잘 드러낸다. ‘최재천의 공부’는 특별한 분야에 한정돼 있지 않고, 숨은 비법을 공개하려는 목적도 아니다. 지금,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에겐 독서가 취미고, 공부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무엇을 더 바라지 않고, 문제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은 철 지난 지식과 정보 수단의 매개체로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자기 경험의 일반화와 자기 삶의 이력이 곧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은 최재천의 말은 논거는 부족하다. 인터뷰가 아니라 단행본 글쓰기였다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겠으나 유튜브 시대의 인터뷰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하는데 익숙해진 독자를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이해할 만하다. 어쨌든 책이라기보다 텍스트 유튜브를 본 느낌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대체로 익숙한 독자인 모임 참석자들에게 난이도를 떠나 투자(시간과 노력) 대비 효과(지적 충격, 정서적 감동, 새로운 지식과 정보, 낯선 생각과 태도 등)가 별로 없을 수밖에 없다.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 굳이 책을 낼 필요는 없다. 글을 쓰는 일보다 바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하는 편이 낫다. 지금 쓰는 글이 가장 중요한 일일 때 독자들은 그에 걸맞는 반응을 보인다. 


사회생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에서는 최재천을 피해갈 수 없다. 진화론이나 과학의 경이로움을 대중에게 전파한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인지도는 양날의 검이다. 스스로 베일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콘트롤은 자기 몫이다. 그러나, 그 인지도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대중의 타성적 사고에 균열을 일으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한 매력이다.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이 읽혀 대한민국 공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짜 공부란 무엇인지, 왜 계속 공부해야 하는지, 인간에게 공부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해 보인다.


공부는 자기 성장이다. 공동체의 발전과 사회에 대한 기여는 자기 성장의 결과일 뿐이다. 스스로 깨닫는 즐거움,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괴로움, 견고한 현실의 벽과 마주하는 슬픔, 타인과 세상을 향한 관심 등 공부는 쉼 없이 자신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독서 모임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이후의 자기 공부의 방향과 성장에 관심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은 탐욕과 이기적 본능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권력과 자본이라는 토르의 망치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공부는 자존감을 높여주고 두려움을 없애주며 당당함을 선물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공부 방법을 가졌으면 좋겠다. 변치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만히 있어도 달라진다. 수많은 독학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모든 공부는 자신을 향한다. 앎이 곧 삶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공부는 적어도 무엇이 부족한 지 정도는 깨닫게 한다.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은 각자의 방법과 스타일로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분야와 상관없이, 넓이와 깊이도 무관하게 자기만의 철학, 자기만의 공부가 따로 또 같이 뒤섞이는 자리가 이어지고 언제 어느 곳에서든 계속된다면 네가 잘못 본 거라고, 네가 잘못 들은 거라고 끝까지 우기는 대신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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