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만세 매일과 영원 6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체로 현대소설(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안 읽히기 시작한 지 오래다. 사적 영역에 머물러 감정 과잉으로 심리 묘사와 미문에 집착하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에 이르지 못하거나, 구조적 모순과 시대정신에 천착한 작품을 찾지 못했거나, 특정 직업과 상황에 몰입해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소설들이 많아서라고 위로해 보지만 전적으로 ‘나’라는 독자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진단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도 읽지 않은 소설가의 에세이 『소설 만세』에 도전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픽션을 다루는 작가의 산문집을 멀리한다. 사적인 영역에 대한 무관심과 작품으로만 만나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은 에세이의 형식을 빌린 ‘소설론’이다. 소설 작법 혹은 소설에 관한 명상이라고 해도 좋고 소설의 기능과 역할 혹은 개성과 특징이라고 해도 좋다. 이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가리타니 고진을 새삼스레 떠올릴 필요도 없다. (참고 : 우리시대 지식논쟁_'근대 문학은 종언을 고했나' 1. 이제 '그들만의 문학'...근대문학은 끝났다, 조영일 2. 근대문학 종언론은 상상 혹은 소통일 뿐, 최원식 3. 종언 '위기'를 근대문학의 '기회'로, 권성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리얼리즘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자리를 잡았나 살펴보라. 근본적으로 체제와 시스템을 뒤흔들만한 비판적 문학이 사라진 자리에 놓인 ‘공감’은 이기적 욕망과 숱한 ‘사랑’으로 채워졌다. 비평의 종말은 자연스러웠으며 한국의 문예비평은 그들만의 리그로 축소됐다.


정용준은 소설을 쓰며 소설을 가르친다. 소설의 성격과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개인적 경험을 살피고 자신의 소설 작법을 소개한다. 창작수업과 일반적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만한 에피소드가 나열된다. 가끔,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싶은 회의적 생각이 든다. 기초적인 방법론과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는 필요하겠으나 결국엔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야 하는 유목적 책읽기와 비판적 글쓰기로 귀결돼야 하지 않을까. 


자연과학을 제외하고 문학과 사회과학 혹은 예술 영역은 학문적 체계와 이론을 배우고 익히는 단 하나의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인지주의 학습 곡선을 따라가며 성실하게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가는 방법도 있고, 쾰러의 통찰설에 걸맞게 계단식으로 단번에 쑥쑥 자라는 사람도 있다. 축적된 내공과 경험과 사유의 깊이는 지극히 개별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며 관점에 따라 열정의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은, 아니 문학은 점점 위태롭다. 어쩌면 텍스트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며 본능은 입체적이다. 추상적 기호, 2차원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텍스트의 모호함은 지난하고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은 작가와 독자 모두 무언가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과 꿈이 있어야 가능하다. 


꿈 없는 잠이 이어진다. 목적 없이 걷고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일상이 지나간다. 타인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자기 삶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오히려 ‘행복한 삶’에 가까운 게 아닐까.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인 경험을 우리는 자주 하지 않는가. 안다는 건, 알고 싶다는 열망과 너무 차이가 크다. 질문과 성찰이 불행을 자초하기도 하고,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문학은, 아니 소설은 단순한 허구의 세계가 아니다. 또 다른 현실이며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이다.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지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인물과 개연성과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어도 좋고, 모두 공감하지 않아도 좋다. 소설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사람들을 위로하고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고독한 독서가 주는 효용을 생각하면 소설가의 역할도 저마다 다를 테다. 소설이 ‘만세’라고 외쳐도 좋다. 아니, 소설가는 그럴 수 없다면 쓸 수 없으리라. 독자는 그 소설가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수 있을지 오늘도 고민하며 책장을 넘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