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픽션 - 과학은 어떻게 추락하는가
스튜어트 리치 지음, 김종명 옮김 / 더난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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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떻게 추락하는가. 도발적인 질문이 계속되지 않으면 오류와 무지는 뉴스와 상식으로 둔갑한다. 지치지 않는 문제 제기는 건강한 사회의 척도다. 계속되는 질문과 비판적 시선 앞에 실체적 진실이 잠시나마 드러날 뿐이다. 사이언스도 픽션이 될 수 있다. 과학자도 소설을 쓴다. 스튜어트 리치가 말하는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성과 합리, 논리와 근거가 통계 조작과 무수한 인간의 의지에 따라 어떻게 일그러질까.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척도는 재현성과 투명성이다. 어떤 실험 결과, 유력한 과학 잡지에 실린 논문이 재현 불가능하다면 어떨까. 그 실험과 통계 분석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도 괜찮을까. 경제와 정치, 사회와 문화 분야에서 엇갈리는 서로 다른 주장은 하물며 ‘내가 옳다’는 주장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은가. 서로 다른 관점, 엇갈리는 주장 속에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과학적 태도가 우리 일상에서 절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코미디 프르그램 <브래스 아이Brass Eye>에서 인용한 “그것이 과학적 팩트다. 증거는 없다. 하지만 과학적 팩트다.”라는 문장이 ‘과학은 사회적 활동이자 인간의 실수를 드러내는 도구’라는 서문 앞에 붙어 있다. 무지는 학교를 다닌 기간이나 학위의 문제가 아니다. 직업과 나이, 종교와 인종과 성별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가장 객관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과학의 ‘픽션들’을 살피는 동안 참담해진다. 인간은 얼마나 미성숙하고 한없이 부족한 존재인가. 그래서 누군가는 종교를 찾고 오직 모를 뿐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거나 가슴 뛰는 삶을 살라고 충고하는 건 아닐까. 


누구나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산다고 착각하지만 대개 ‘생각’의 방법과 태도가 한없이 부족하다. 안다는 믿음이 편견과 오해를 만들고 집단 최면에 사로잡힌다. 각종 건강식품부터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실험과 검증을 거쳤다는 주장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허비하며 사는지 모른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짚어내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각자의 상식, 모두의 팩트, 변함없는 진실은 언제나 안녕하지 못하다. 


저자는 과학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그 반복 재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짐바르도와 밀그램의 심리실험으로 포문을 연다. 과학의 위기를 자초한 과학자들의 대표적 사례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한국의 황우석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조작, 편향, 부주의, 과장’이라는 네 가지 문제점을 통해 실수와 오류를 은폐하려는 학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본 후에 잃어버린 과학의 정신을 되찾는 길을 제시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삐뚤어진 현실은 현상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문제는 대개 공명심, 권력, 이해관계와 결탁한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 있다. 넓은 의미의 정치적 요소가 발견되는 과학계의 허구는 특히 위험해 보인다. 우리는 과학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인류 문명의 발달과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최소한의 객관적 지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의 말처럼 과학자는 “바라는 것도, 애착도 없어야 한다. 단지 돌과 같은 심장을 가져야 한다.”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심장은 돌이 아니고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관적 판단과 편견, 감정이 뒤섞인 인간의 과학은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각종 실험과 통계로 입증된 이론, 권위 있는 잡지에 교차 검증이 끝난 논문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보편주의에 입각해서 사심없이 공동체를 위해 조직적인 회의주의를 채택하자는 머튼 규범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어떤 조직에서 일이 진행되고, 정부에서 정책이 시행되고, 국회에서 입법활동이 이뤄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현실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과학적 엄밀함까지는 아니어도 머튼 규범의 필요성 정도는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각자의 진실, 각자의 상식, 각자의 공정, 각자의 정의, 각자의 논리가 오늘도 상대방을 겨누고 공동체를 지옥으로 이끈다. 과학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한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은 어디서부터인지 몰라서 모두 숨죽여 엎드려 있는 건 아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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