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임은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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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한여름 김밥과 같다. 상하기 쉬운 음식처럼 부패는 권력의 본질적 속성이다. 감시와 견제 없이 건전한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본능에 가깝고 제어 장치 없는 권한과 통제력을 개인의 선의에 도덕적 책임감에 의지하는 조직은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영속적 합법적 권력 조직인 검찰은 정권의 부침,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상명하복,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몰상식한 문화를 자랑처럼 외치면서도 무엇이 잘못이냐고 반문하는 조직이다. 


대체로 조직 문화가 병들고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의 환부가 일상적 관행으로 여겨지는 집단에 속한 구성원은 내면 깊숙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101호’를 거친 사람들처럼 조직의 논리와 강점, 전통과 문화의 이로움에 대해 피를 토한다. 그렇게 내면화된 무소불위의 자기 무오류성은 언제나 ‘법과 원칙에 따라’를 붙여 선량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해도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오만함으로 무장한다. 선택적 정의와 지연된 정의로 단련된 법 기술자들이 사건 뭉개기와 집요한 표적 수사와 기소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들만의 리그와 권력의 사유화에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부 국민들을 오히려 ‘개돼지’로 명명하며 자신들의 논리와 공정과 정의를 응원한다는 오만을 합리화한다. 박수부대로 동원되는 레거시 미디어와 언론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부나방들의 합작품이 양산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거대한 무지와 맹목적 지지가 사회를 병들게 한 역사적 사례를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비판적 사고가 없는 인류의 악행을 다시 거론할 이유도 없다. 


이것은 진영논리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든 문재인 정부든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던 임은정 검사에게 붙여진 별칭들이 황당했을 것이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현실을 지옥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내부 고발자 임은정의 목소리가 다른 조직, 다른 집단에서 없었던 건 아니다. 이해관계에 얽힌 그들은 조용히 수많은 임은정들을 묻었다. 나름의 논리와 나름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입을 막고 목을 비틀었다. 행정기관, 공공기관, 군대, 학교, 기업 어느 곳 하나 그렇지 않은 곳이 있을까. 상호 이익을 나누고 묵묵히 눈빛을 교환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가담해서 그들을 엿 먹이지 않았는가. 


왜 나서서 불편하게 하나, 너만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야,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느냐, 누군 몰라서 그러지 않는 줄 아느냐, 나도 젊었을 땐 그러지 않았다, 너도 나이 들어 보면 안다, 지금은 니가 뭘 몰라서 그렇다, 전체 조직을 생각해…… 우리는 그들 곁에서 침묵하지 않았는가. 알고도 외면하지 않았는지. 당신들은, 아니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임은정 검사는 “정권은 유한하나 검찰은 영원하고, 끈끈한 선후배로 이어진 검찰은 밖으로 칼을 겨눌 뿐 내부의 곪은 부위를 도려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188쪽)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문이 열릴 때까지, 벽이 부서질 때까지 저는 두드릴 것이고, 결국 검찰은 바뀔 것”(227쪽)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의 무지가 그들의 권력에 복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비판과 견제 없는 권력을 ‘국민’에게 위임받을 수는 없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자들의 오만함이 때때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고용인이 누구인지 망각하는 걸까. 특히, 대한민국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자기 혁신 없이 병든 환부를 도려내지 못하고 그들만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현실은 정치, 경제, 사회를 오염시키고 더 나은 세상이라는 꿈을 버리게 한다. 그래도 검사 임은정은 외친다. 계속 가보겠다고. 고장난 저울은 고쳐 쓰는 게 상식과 공정과 정의가 아닌가?


검찰의 저울이 고장 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울을 고치라고 계속 외쳐주십시오. 검찰이 고치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으면, 더는 고장 나지 않을 테고, 편향적이고 불공정한 검찰권 행사를 다소나마 주저하지 않겠습니까? -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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