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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 - 지식발전소 01
사이먼 토미 지음, 정해영 옮김 / 유토피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인류의 발전 단계의 종착역이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은 철저하게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역설하듯이 미래 사회에서 부는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체적으로 자본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지식을 망라할 수 있는 모든 생산수단과 국적불명의 대규모 자본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세계화를 이룩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와 인류의 삶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한다고 믿는 몽상가는 이제 많지 않다. 자연선택에 의해 동물적인 진화가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한다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화와 변화, 진보와 발전 사이에서 인간은 늘 희망을 꿈꾼다. 그것이 헛된 꿈일지라도 우리는 미래가 없는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할 수 없다. 지금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비관적인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가열됐던 80년대보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의 주장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주소는 물론 과거로부터 이행과정을 되짚어본다. 자본주의는 왜 등장했고 어떻게 굴러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쉽고 평이한 내용으로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한한 리오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만큼 알기 쉽고 적절하게 설명한 책을 찾기 힘들다. 이 책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현재’에 해당한다. 그 중심에 ‘시애틀’이 놓여있다. 자본주의의 총아인 미국 시애틀 사건을 단순히 성난 군중에 의한 시위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 반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전 세력들이 어떻게 연합해야 하면 그들이 가진 한계와 모순은 무엇인지 짚어내는 저자의 안목과 비판적 관점은 매섭기만 하다.
이론적 토대와 경제학에 입각한 논의가 아니라 현실 정치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짚어내는 ‘운동들의 운동’에 관한 논의가 이 책의 핵심이다. 개혁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넓고 다양한 사회적 스펙트럼들을 펼쳐 보여준다. 멕시코의 사파티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현실 가능성과 실제 상황 속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과 논리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한 눈에 만만찮은 내공과 논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론 부분에서 앞서 논의되었던 다양한 입장들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활동가 혹은 학자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나 각각을 위한 책들은 조금씩 다른 입장과 관점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쉽고 가볍게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들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 흐름과 의미를 개괄할 수 있으며 반자본주의의 미래까지도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하나의 응집된 운동과 현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숙제가 남겨진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넘어 저항할 수 있는 당연한 논리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은 당연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희망을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산층’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스스로 ‘시민’이라고 믿고 있다.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가며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에 대해 남의 얘기로 믿고 싶어한다. 평등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자본에 집착하며 스스로 소외되고 20%가 되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덫에 치여 죽는다.
목숨을 걸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에 의해 사립학교법은 무효화되었고 입도선매의 달콤함을 맛본 대학들은 인재의 육성보다 선발에 목숨을 걸고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대학을 졸업하고 놀면서 최소 1억은 있어야 법앞의 평등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며 대다수 인간을 황폐화시키고 있지만 저항하기 보다는 순응하며 많은 돈을 벌어 자본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한 태도와 생각 자체가 이미 노예인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현실 상황에서 이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전부가 활동가가 될 수는 없을까?
혼자서 꾸는 꿈은 한낱 백일몽에 불과하지만 우리 모두가 동시에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외면한 채 살아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잘 길들여진 우리들은 오늘도 내일의 희망과 미래의 꿈을 자본에 맡기고 살아간다. 온 국민이 ‘부자되세요’를 가장 듣기 좋은 덕담으로 외친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했지만 그 리얼리스트의 한계를 이 책에게 묻고 싶다. 어디까지 현실과 타협하며 어디까지 행동하며 살 것인가. 철이 든다는 것은 세상 속에 묻혀 산다는 것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남들처럼 사는 게 좋다고도 한다. 하지만 한 번도 그 길이 좋아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
070710-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