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 다양한 몸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위하여 땅콩문고
백정연 지음 / 유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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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할 때마다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들 해서 짜장면을 좋아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외식하며 먹어 본 음식이 짜장면밖에 없어서 항상 짜장면을 고른 거더라고요.” - 50쪽


어쩌다 한번 외식을 할 때 떠오르는 메뉴가 자기 경험의 한계다. 마치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세계처럼 음식은 삶의 경험을 함의한다.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보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어느 요리사의 금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어진 환경, 양육과정, 현재 생활 정도에 따라 선호하는 음식이 달라진다. 우영와 김밥은 어머니와 고등와 또 다르다. 가수 김창완은 「어머니와 고등어」에서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는 걸 발견하고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 어머니의 나지막한 코 고는 소리를 듣는다. 자신의 경험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상상력의 한계가 자기 인식의 범위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 


백정연은 장애인을 소외된 이웃이나 배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척수장애인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도 발달 장애 관련 기관에서 일했으나 생활 속의 장애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다. 거주지의 조건은 물론 욕실의 배치와 가구, 생필품의 위치까지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은 신경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수사가 없고 건조하고 덤덤한 목소리로 일관한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아, 노인, 환자를 포함하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하며 외출을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행사인지 실감한다.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나. 아니 적어도 그들을 비난하거나 내 불편을 호소하며 분노하지는 않았을까.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은 장애인 가족을 위한 매뉴얼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다양한 몸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행복의 크기를 위해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넷플릭스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라는 용어도 낯설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하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더 어색하다. 장애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이해의 폭을 넓힌 드라마의 순기능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 현실은 드라마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대략 5%, 250여만 명의 장애인이 살아간다. 비장애인 4,750만명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일까. 여전히 우리는 장애인과 그들의 삶에 대해 무지하다. 


발달장애 관련 기관에서 일하다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쉽게 만들어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소소한 소통’을 설립한 백정연은 척수장애인과 결혼했다. 내 삶의 일부, 아니 장애인이 가족일 때 일상생활은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르다. 저자는 결혼과 일상을 통해 장애인과 사는 법을 비로소 알게 된다. 동료로, 친구로 조금 더 알아야 할 일들이 일반 시민들의 책무라면 저자는 조금 더 세심하고 깊은 곳까지 헤아리며 장애인의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책과 달리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을 질타하지도 않고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동료, 친구, 남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 갈피마다 숨어 있는 비장애인들의 시선과 제도적 문제점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책 변경, 시설 개선을 촉구하는 대신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 부분에 제시한 장애인과 경계를 허물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매우 현실적이다. “모든 집마다 장애인이 있으면 좋겠어.”라는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해와 공감은 경험에서 나온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 장애인 문제가 그렇다. 행복한 사회는 다수가 행복한 사회보다 소외된 소수가 행복한 사회에서 더 빨리 실현된다는 저자의 말은 울림이 크다.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차별 또는 폭력을 감수하며 사는 것과 같다는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부한 문장이 때로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어린이, 노인에 대한 배려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다를 바 없다.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할 만큼 충분한 경제력 토대를 마련했고 성숙한 시민의식도 갖추고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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