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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최은숙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남산 1호 터널을 빠져나온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고개를 들어 건물 꼭대기에 적힌 ‘국가인권위원회’ 일곱 글자를 올려다본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설립한 국가 기관이다. 감사원과 헌법재판소처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 기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관의 수장에 따라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정치적 편향성에 몸살을 앓기도 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른 어떤 기관보다 국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아니, 그 상징성만으로도 인권감수성을 높여온 공을 인정받아 마땅하다.
20여 년간 인권위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최은숙의 책 제목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호소’라는 단 한마디가 그렇다. 이메일 주소를 결정할 때 의견이 모아졌다는 ‘호소’라는 말이 인권위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하다. 법치를 부르짖는 법기술자들, 선택적 정의를 구현해온 정치인들, 사람보다 이익과 효율을 앞세운 자본가들 앞에서 잃어버린 인권은 여전히 ‘호소’의 대상일까. 『불편해도 괜찮아』같은 책은 물론 인권영화프로젝트 등으로 꾸준히 국민들의 인권 감수성을 지켜온 인권위의 노력과 달리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를 담고 있다. 생활인으로서 느낀 소탈함, 조사관의 고충과 애로사항, 안타까운 사연과 진정인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진다. 현실을 전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면 이 책은 쉽고 친근하게 다가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을 일반화하는데 성공하고 있어 공감과 설득력을 얻는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실수를 바로잡는 일은 왜 어려울까. 공무원들은 실수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나 때때로 자기 책무를 방기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급이 높을수록, 권한이 많을수록. 그래서 최은숙은 “비극적인 사건은 본래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정확히 정반대로 한 경찰, 검사, 판사, 국선변호인이 만들어낸 불법과 무책임과 무능의 총체적 결과였다.”(73쪽)라고 말한다. 엉뚱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공권력이 남용되며, 시민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체를 위해 개인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거나, 너 하나 때문에 모두 불편하다거나, 그걸 왜 갑자기 문제삼느냐고 말한 적은 없을까.
내로남불은 모든 인간의 습성이라는 사실 앞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걸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건 나이, 학벌, 재산, 권력과 무관하다. 한 인간이 타인과 세상을 향한 태도의 문제다. 대개 그걸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거나 진영논리의 첨병이 된다. 특정 직업의 확증편향으로 나타나거나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으려 든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대개 문해력이 떨어지고 가진 게 없거나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공정과 정의는 너무 멀다.
공감도 능력이다. 감수성도 공부가 필요하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도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의 이야기가 자칫 인권위 조사관이라는 흔치 않은 직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조금 더 나아지고 있는지,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살아가는 건 아닌지, 세상이 조금씩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는지 살펴보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어떤 책은 독자에게 호소하는 대신 스스로 세상을 향해 빛을 낸다. 그 말들 사이사이에 놓은 너무 당연한 생각들이 더 많이 공유되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