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는다 - 누구나 한 번쯤은 믿어봤을 재밌거나 이상하거나 위험한 생각들, 스켑틱 특별 합본호
니콜라 고브리트 외 지음,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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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지가 빚어낸 상상력은 아름답다. 그러나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1864)이 무지의 산물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지만 인류의 집단지성은 그것이 개연성 있는 허구의 세계인지, 이성적으로 가능한 과학적 현실인지 구별할 정도의 이성은 갖추게 됐다. 지구공동설에 기반한 이 기막힌 상상의 세계는 이제 SF 소설로 분류됐지만 당대에는 북극 탐험의 기폭제된 어느 사내의 미친 열정에 빚지고 있다. 지구 내부가 비었다는 공동설을 주장한 존 클리브스 시머스는 북극을 통해 속이 빈 지구 내부로 들어가려는 꿈을 꾸며 현실과 상상의 세계 양쪽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탐험대가 마침내 북극에 도착하기 불과 수십 년 전인 1829년에 49세로 사망했으나 그의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상한 것을 믿는 게 꼭 삶에 부정적 영향만 미치는 건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유토피아를 꿈꾸고 지구의 내부에 또 다른 구체가 존재한다는 상상력은 환상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대체로 지나치면 독이 된다. 현실 부정의 논리로 작용하거나 극단적 맹신주의로 흐를 때는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다. 종교, 과학, 신념 등 그것이 어떤 명목이든. 


스켑틱 협회는 1992년 마이클 셔머가 설립한 비영리 과학 교육기관이다. 한국 스켑틱이 계간지 형태로 3, 6, 9, 12월에 발간된다. 이 책은 인간의 멍청함에 대한 보고서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데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인간의 무모함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불편하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인 과학 분야조차 이상한 믿음은 계속된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너무 익숙해서 과학이라는 말이 남발된다. 인상은 과학이고, 침대도 과학이고, MBTI도 과학이고, 혈액형과 별자리도 과학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고 휴대폰은 암을 유발하고 음식으로 뇌를 고치며 음이온이 건강을 관리하는게 가능할까. 회의적인 회의주의의 시선은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샘 해리스 등 55,000명 이상의 회원을 거느린 협회의 명성만큼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인 해명 혹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아니 세상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 걸까. 


특허청이 “음이온과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토르말린, 모나자이트, 옥, 황토가 체온상승, 혈액순환 및 신진 대사 촉진, 성인병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라는 발명가의 엉터리 주장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인정해준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런 특허 중 상당수가 과거 미래창조부가 관리하는 구각연구개발 사업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엉터리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까지 내주었다는 뜻이다. - 108쪽


인지 부조화, UFO, 예지몽, 유체이탈, 심령사진 등 이 책에는 성격과 운명, 일상 속 과학, 저세상에 관한 이상한 믿음 등 조금씩 한번은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파란색 냄새를 맡는 소녀, 천국을 보았던 임사 체험자 등 우리 주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확대 재생산된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이야기에 대한 호감이 만들어낸 재미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어느새 진실이 되고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부터, 점을 보는 사람들, 징크스를 믿는 운동선수까지 우리 곁에는 다양한 형태의 이상한 것들이 널려 있다. 이것은 단순히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 방식과 태도의 문제다. 


마이클 셔머의 『스켑틱』을 인상 깊게 본 터라 이 책은 정기구독 잡지의 특별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국내외 저자들이 들려주는 유사 과학에서 음모론까지 다양한 ‘이상한 것’들이 소개되고 그 믿음의 근거와 사람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물론 각 주제를 맡은 회의주의자들은 그 실체를 파헤쳐 분명한 증거 혹은 논리적 근거로 이상한 건 그냥 이상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성찰하는 게 귀찮으면 이상한 것을 믿으며 살면 된다. 우리는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목적과 방법에 따라 나름대로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다른 걸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면 삶은 각자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이 타인에게 주는 영향, 공적인 영역에서의 태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러나 대개의 경우 사회적 관계, 정치적 표현, 종교적 태도, 일상적 습관에 드러나는 다양한 ‘이상한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어떤 호소의 말도 들리지 않고, 진실의 조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마음을 바꾸기 어렵다. 그에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는 당신을 외면할 것이다. 사실이나 수치를 보여주면, 그는 출처를 물을 것이다. 논리에 호소해도 그는 논점을 피해갈 것이다. - 레온 페스팅거,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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