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신진욱 지음 / 개마고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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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현실을 ‘기득권 기성세대’와 ‘희생자 청년세대’ 간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세대 불평등 담론과 비판적으로 대화하면서 각 세대의 계층격차 현실과 더불어 한국사회 불평등 구조의 세대 구성을 조명했다. - 10쪽

세대차generation gab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개인과 집단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성급한 일반화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뭉개고 정치적 수사로 활용되어 특정 집단, 정당에 대한 비난으로 활용된다.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과 선거에 활용하는 정치인의 발언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는 없을까. 사회학자 신진욱은 『그런 세대는 없다』고 단언한다. 지시어 ‘그런’은 대중문화, 교육환경, 시대 배경 등 통상적으로 느끼는 세대가 아니라 ‘청년 담론’이 본격 적으로 시작된 세대 간 갈등 양상을 의미한다. 신진욱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국내 모든 중앙지와 경제지에서 ‘청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모든 텍스트의 빈도 추이를 주간과 일간 단위로 분석했다. 2011년 8월, 2015년 8~9월, 2019년 9~10월이 지난 30년 동안 가장 의미있는 청년담론의 폭발기였음을 확인한 신진욱의 분석은 짐작되지 않는가.

불평등, 공정, 기득권, 일자리, 청년실업 등 우리에게 익숙한 세대 간 갈등 요인이 사실은 세대 내 담론에 대한 비판적 기능이 상실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586으로 대표되는 50대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면, “80년대에는 고교진학률부터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에, 전체 학령인구 중 대학 취학자의 비율은 대학진학률에 한참 못 미쳐서, 공식 교육통계에 따르면 1980년대에 학력인구 중에서 고등교육기관 취학률 평균은 20%였고, 4년제 대학 취학률은 13% 정도 된다.” 10명 중 8~9명은 대졸이 아니다. 지금보다 임금 격차가 극심했고 그들은 여전히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로 살아간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소수의 50대가 청년세대의 일자리를 빼앗고 부동산소득을 독점했다는 착각은 2030세대의 정규직, 소득, 자산 규모에 대한 분석으로 자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세대 간 갈등은 세대 내 불평등의 착시현상에 불과한 게 아닐까. 공정의 정의 그리고 불평등의 문제에 ‘세대’를 개입시킨 이유와 의도는 무엇일까. 객관적 지표가 가리키는 현실은 자본주의가 배태한 본질적 모순이며 해방 이후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악순환에 불과한 게 아닐까. 87체제 이후 우리가 놓친 문제, 해결하지 못한 과제는 여전히 계급 배반 투표, 정치적 프로파간다 그리고 거시적인 사회구성체에 대한 의제 부족이다. 시대적 화두가 급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대사를 돌아보면 대개 사회를 보는 관점과 비논리적 경제 발전의 방향에 대한 이견이 모든 문제를 촉발한다. 그걸 확대 재생산하며 정치와 언론, 기업의 논리가 춤을 추며 혹세무민한 결과는 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 확대, 고용없는 성장, 자영업의 증가로 이어져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으로 나타난다. 

당대의 사회현상을 한두 가지 문제로 압축하거나 몇 가지 정책으로 해결하겠다는 거짓말에 속는 국민들의 고통은 참담하지만 성찰없는 시민은 유사한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신진욱은 기성세대가 곧 기득권이라는 착각이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가린다고 주장한다. 누가 왜 ‘청년’을 말하는지, 정치 담론에 세대 담론이 희석되는 순간 우리의 현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매일매일 목도하고 있다. 정치는 현실이며 내 삶의 뿌리다. 정치에 대한 외면과 무관심은 곧 자기 삶에 대한 외면이다. 사회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대 담론이 지워버린 현실과 눈감아버린 삶은 생각보다 처참하다. 

성찰 없는 진보, 대안 없는 보수의 정치 게임에 자기 등이 터져도 감정적 대응과 인터넷 댓글놀이에 몰입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2030과 4050 같은 세대 분리가 가져오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신진욱은 “흐르지 않는 물길에 고인물은 오래 되어서 고인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인물이다.”라고 일갈한다. 10대에 이미 고인물이 될 수도 있고 70대에도 흐르는 물이 있다. 숱한 세대론 사이에서 2022년의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한 신진욱의 노고와 관점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정치적 이념,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이기적 잣대로 활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독일의 작가 페터 바이스는 그의 장편소설 『저항의 미학』에서 지배에 대한 저항은 연대를 통해 가능해지며, 연대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다고 썼다. 노년의 안도, 중년의 안도, 청년 안도가 서로의 삶과 역사를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불평등으로 갈라진 시대를 함께 넘어설 세대 간 연대의 토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 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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