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알고도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동아시아에 속해있다는 지정학적 사실은 우리 민족 혹은 국가의 운명을 질곡의 세월로 이끌었다. 물론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수동적이고 피학적인 전제가 깔려있으나 수백여 차례의 외침을 받고도 근근이 버텨온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동아시아는 단순히 지리적인 범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동아시의 역할과 한계 그리고 그 의미를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여러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삐뚤어진 시각과 좁은 시야에 갇혀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세기 초 일본의 군국주의의 군화발에 짓밟힌 민중들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황된 주장에 현혹된 위정자들이 겪은 동아시아의 역사는 동일하지 않다.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는 또 하나의 시원한 외침이다. 박노자를 벽안의 외부인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학자라고 명명하고 싶다. 한국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에 정통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고 학문적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한 개인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주관적이다. 역사에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승리자의 것이든, 민중들에 의한 것이든 모두를 담아내든 하나의 관점은 좁은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관점들이 비슷하거나 방향만 달리한다고 해서 폭넓은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거나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노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신선하다. 적어도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시각과 비판적 관점을 갈망한다.

  독서는 저자와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다. 의사 소통의 행위로서 독서는 읽는 과정에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며 독자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때로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나누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품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진정한 독서가 이루어지고 깊은 감동과 내면의 울림이 이어진다. 독자 개개인의 성향과 역사에 대한 관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설득력있는 이야기와 사실에 근거한 의견들은 진정 ‘우리가 몰랐던’ 역사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휴머니즘, 20세기에 대한 기억들, ‘근대’의 문제,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 제국주의와 개인 그리고 양심 등 폭넓은 주제들에 관한 박노자의 단상들은 귀화 한국인 박노자를 가장 한국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인으로 보이게 한다. 단순한 저자에 대한 호감과 감탄을 넘어서 그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세계 안에서의 모습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나 <나를 배반한 역사>에서 보여주었던 시각들이 불편했던 독자라면 이 책 역시 쉽고 만만하게 그의 논리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가장 나쁜 관점은 아닐까? 구석구석 숨어있는 인물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역사가 흘러온 과정 속에서 그 흐름을 읽어내고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혁명에 관한 논의는 흥미롭다.

  미래 상황에 대한 가정법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과 미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자본주의와 개방의 물결은 사회체제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경제개발을 빌미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모순들을 해결해 나간다 해도 그들의 미래를 그려내기는 어렵다. 또다시 ‘혁명’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과 타당성이 있는 미래다. 한 번 경험한 민중들의 힘과 의지는 향후 두 나라의 사회체제의 변화와 모순 극복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나 연합이 이루진 적이 없지만 지리적 여건과 문화적 교류 때문에 끊임없는 상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동아시에 대한 박노자의 이야기는 내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비참하고 우울했던 우리의 역사가 동아시아라는 환경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 특히 근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일본제국주의의 광기에 피 흘리며 쓰러졌던 민중들, 위정자들의 부패와 한계는 여전히 아픈 현재로 남아있다. 단순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 알아야 할 내용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는 이 책은 동아시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07070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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