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2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2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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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은 힘이 세다. 운동선수들의 루틴routine은 반복적, 습관적 동작과 절차를 통한 능력향상이 목표다. 그러나 자본의 루틴은 조금씩 변태(탈바꿈)를 통해 순환구조를 만든다. 마치 영원반복의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에셔의 개미처럼 노동자는 자본의 순환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 화폐자본의 순환으로 시작된 자본의 무한 반복과 잉여가치의 증식과정은 충분히 예상되는 과정이다. 각 단계가 반복되며 점차 눈덩이를 굴리듯 불어나는 자본은 제 몸집을 가누지 못하고 그 속도를 감당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하루 해가 금세 저물듯 인류의 역사는 돌아보면 순간인듯 보인다. 숱한 희노애락과 기쁨과 슬픔이 흔적도 없이 지나온 자리마다 꽃이 피었을까. 아니면 먼지처럼 사라진 시간의 두께만 켜켜이 쌓였을까.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제 목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목적도 방향도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간다. 타인과 세상의 거리만큼 자본과 노동자의 삶의 거리도 좁힐 수 없을만큼 점점 멀어져 간다.

화폐자본이 순환하면 생산자본과 상품자본도 순환한다. 유통과정을 통해 세가지 순환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자본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화폐, 상품, 생산도구로 탈바꿈한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유통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하나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정교하고 치밀한 과정을 거치며 착취한 노동력으로 잉여가치를 만들어 순환 구조를 만든다.

돌고 도는 세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 - 자연의 반복과 변조가 아니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자본을 통해 확대재생산하려는 욕망을 빗댄 표현이 아닐까. 생로병사의 수레바퀴를 아래서 우리는 태어나 살다 죽는다. 희노애락은 그 과정에서 겪는 짧은 기억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흔적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이 굴러간 자리에는 분명한 흔적을 남기며 스노우볼처럼 자기 증식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삶의 태도를 빨아들인다. 자유는 허울좋은 이념에 불과한 게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니. 지나친 니힐리즘은 건강에 해롭지만 마선생님의 문장 사이 사이에 번뜩이는 통찰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순환 논리가 아니라 인류의 삶에 대한 비극적 전망으로 들린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은 잘도 숨는다. 그래도 우리는 내일 향해 쏜다. 별빛을 찾아 하늘을 보고, 푸른 하늘을 향해 웃음 짓는다. 하루하루 우리를 견디게 하는 힘은 아마도 무지에 대한 열망과 미지에 대한 안도감이 아닐까. 때때로 바람이 분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카페에 머물기 적당한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자본의 회전은 식당 회전과 닮았다.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은 가변자본과 불변자본과 다르다. 생산자본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이 노동력을 규정한다. 중농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 그리고 리카도는 어쩌자고 노동력을 유동자본으로 확정해서 마선생님을 화나게 했을까. 노동시간과 생산시간은 상품과 업종마다 천차만별이다. 농업, 임업 등 공업과 다른 분야는 노동에 투자하하는 시간과 방법이 다르고 생산 과정과 방법에 따라 순환되는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론과 개념으로 묶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엥겔스가 정리했다는 2권은 3권과 달리 마선생님 특유의 문장을 읽는 맛을 잃었다. 건조한 설명과 성실한 고민만 드러날 뿐, 문학적 비유도 사이사이 드러내던 아재개그 코드도 없다. 지루하지만 1권에서 보여준 정치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충실하게 보충하고 설명을 보태 시야를 넓히고 있다. 당대 주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간의 노동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느낌이다. 화폐와 자본, 상품과 생산 너머에 언제나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본주의 생산과정과 유통 시간은 뗄 수 없는 관계다. 회전 시간이 투하자본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절대적이다. 가변자본의 회전은 잉여가치율에 영향을 주며 고정자본과 달리 유동자본(가변적 유동본, 불변적 유동자본)에 영향을 받는다. 마선생님은 실제 사례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려 다양한 수식을 동원하다가 실수를 범한다. 엥겔스가 이를 바로잡아 정리한 내용이 표기되어 있다. 실제 현실은 이론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이론이 현실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관점을 유지할 뿐이다. 단순히 생산양식을 넘어 노동력과 화폐자본, 상품자본, 유통기간은 물론 자본의 회전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이 굴러가는지 살펴본다. 오늘의 경제는 훨씬 더 복잡해졌으나 기본적인 틀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도 변했지만 욕망이 그대로이듯.

인도에서 면화를 싣고 희망봉을 돌아 영국에 오는 유통 기간의 이야기는 아득하기만 하다. 수에즈 운하 개통 전 이야기를 예로 들며 자본의 회전 시간을 분석하는 일이 쓸데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는 또 다른 회전 주기로 기업과 노동자는 갈등을 빚는다. 소비 촉진을 위한 트렌드를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데 소비자인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안에서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인간의 욕망을 마음껏 누리고 사는 행복의 나라에 사는 걸까.

잉여가치가 유통되기 시작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자가 발전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노동력의 착취로 시작된 자본의 몸집 불리기는 마치 그것이 온전히, 당연하게도, 자본가의 것인냥 위세를 떨친다. 퇴장화폐로 일시적 보관이든, 새 정부에 호응하며 재벌기업들이 토해내는 축적된 자본이든 그것은 오롯이 잉여가치의 확대재생산 결과라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다. 조 단위의 돈은 어떻게 그들이 거머쥐게 되었을까. 어찌보면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들여다보면 복잡한 다단계를 거쳐 자본주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하며 인류의 삶을 조금씩 나은 곳으로 인도했다. 아니, 그것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류 문명의 혜택이 자본에 집중된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이 먼저이든 부의 편중과 비정상적인 분배 체계-오너와 신입사원의 급여차이에서 한 국가의 빈부 격차에 이르기까지-로 인한 문제는 수준만 달라졌을 뿐 현재 진행형이다.

자본의 변태와 자본의 회전에 이어 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과 유통으로 2권은 마무리 될 예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본 토대 위에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과 유통을 살펴보기 전에 연구 대상과 관련된 중농학파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 리카토, 슈토르히, 시스몽디, 존 스튜어트 밀가 간과한 점들을 살핀다. 개별 자본이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이 운용되는 시스템도 결국 c+v+s의 결합이 바탕이 되지 않을까.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혹은 임금의 관계 설정을 잘못했다고 해서 시스템 자체가 달라지는 않는다. 변하는 건 잉여가치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다.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 아니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하는가.

노동과 임금을 바라보는 차이는 그대로 타인과 세상을 관찰하는 시선에 드러난다.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자기 삶의 비루함을 포장하지 못하듯, 21세기도 여전히 가치 창출의 방법과 대가에 대한 생각들은 고정된듯 보인다. 살아온 대로 생각하고 경험한 대로 판단하며 주어진 대로 만족하는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걸까.

마선생님이 Ⅱ권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부분은 제20장 단순재생산이다. 이것이 어떻게 축적되어 확대재생산 되지는지를 설명하는 제21장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Ⅰ부문과 Ⅱ부문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고 생필품과 사치품이 소비되는 과정 그리고 두 부문에서 불변자본, 가변자본, 잉여가치가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 밝히는 과정은 다소 복잡하지만 그 원리는 단순하다. 고정자본을 보충하기 위해 마멸가치분을 화폐형태로 보충하고 고정자본을 현물로 보충하는 과정이 왜 스미스, 슈토르히, 람지에게는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 오늘의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와 같은 게 아닐까. 보편복지와 선별복지가 이념논쟁으로 번지지 않고, 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부르는 세상은 불가능할까. 맹목적 신뢰, 감정적 증오가 과연 정치인들의 탓일까. 현실은 자신의 역량만큼 세상을 보여주고 고민한 대로 관계 맺으며 보이는 만큼 즐기며 산다. 지식의 양과 통장 잔고가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그밖에 남은 건 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은 도대체 어디에 가 머무는 것일까. 3권을 다 본다고 해서 끊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알수 없는 노릇이지만 내처 걸어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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