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쓸 시간이 없어 길게 쓴다는 어느 작가의 한 마디가 빛나듯 속담은 공동체의 지혜를 함축한다. 오랫동안 구전되어 갈고 다듬어져 대구와 리듬이 생기고 기억하기 좋고 전달하기 쉽다. 민족과 국가마다 유사한 속담을 볼 때마다 인류의 삶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때도 많다. 지역과 인종과 무관하게 인간의 속성은 문명발달의 속도에 맞춰 달라지지 않는다. 한 사회의 집단지성이라 할 만한 속담은 사회학자에게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다. 노명우처럼 대중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현장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사회학자에겐 더욱 그렇다. ‘한 줄 사회학’은 ‘속담 사회학’이다. 단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뼈를 때리는 촌철살인. 한마디로 담아낼 수 없을 때 말과 글이 길어진다. 한 편의 시와 한 권의 시를 비교할 수 없으나 그 감동과 무게와 부피를 분량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노명우의 거의 모든 책을 읽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동어반복과 일관된 관점의 혼돈이 없다. 지적 과잉으로 흐르지 않고 새로운 정보과 관점의 변화가 참신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따스한 눈길이다. 무엇보다도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고 생각하고 다듬은 생각들에 대체로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부모님을 통해 한 시대와 사회를 보고,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세상 물정을 엿볼 수 있는 노명우의 이야기는 편안하게 읽히지만 한참 고민하며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예를 들어, 존 던(John Donne)의 「사람은 섬이 아니다」에서 언급한 대도시적 무관심이 어빙 고프만의 예의 바른 무관심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현대인에게 양면의 칼날처럼 활용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자기방어 매커니즘은 타인의 개입을 거부하는 시스템이다. 허용적 태도와 무질서 사이에서 길을 잃고, 질서와 규정은 권리와 의무를 돌아보게 한다. 둘 이상 모이면 갈등이 생기는 법이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 생각도 감정도 판단도 선택도 태도도 행동도 제각각이다. 그들이 모이면 최소한의 룰을 정하기 마련이고 그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며 문화와 관습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한 줄 속담이 생기기 시작한다. 시간을 견뎌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속담은 너무 많다. 노명우는 그중 열두 개를 골랐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에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까지 누구나 알고 실제 생활에서도 사용하는 속담들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요즘 다시 생각해 볼 속담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는 속담에서 플랫폼 노동과 그림자 노동을 읽어내고,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속담 하나하나가 모두 지금-여기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와 닿아 있다. 현재적 유용성이 없다면 어떤 속담도 활용되거나 전해지지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인간 사회가 드러내는 욕망과 검은 속내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입맛이 쓰다.
인스타그램에는 불행이 없다. 밴드왜건 효과를 거두는 인플루언서를 통해 견물생심, 박탈감이 계속되고 1초도 멈추지 않는 비교, 비교, 비교...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우리는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시대를 살고 있다. 노명우는 디지털 디톡스, SNS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연 가능할까. 그 도구와 방법은 무엇일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세상을 사는 것은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주류를 거슬러 사는 ‘인디적’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웬만한 자신감이 없으면 자기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세우고, 자신만의 원칙을 따르며 선택하고 결정하고, 다른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 흔들리지 않고 “My Way”를 걸어갈 수 없다. 이어서 노명우는 “모방은 우리가 행동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갖게 해주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동일한 행위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단단한 토대 덕분에 현재의 행위는 스스로 이루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해방된다.”(게오르크 지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56쪽)라고 말한다. 모방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My Way”를 걸어갈 수 있을까. 각자의 판단과 각자의 노력이라고 말하기엔 무책임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생은 어차피 자신의 몫이다. 우리가 사회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거시적 안목에서 전체를 보고 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후 삶의 태도와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