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 철학의 개념과 번역어를 살피다 메멘토 문고·나의 독법 2
신우승.김은정.이승택 지음 / 메멘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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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책은 없지, 누가 이걸 좀 써줬으면 좋겠는데, 이 분야를 좀 정리하는 사람은 없나... 책을 읽다 문득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다. 번역본을 느낄 때마다 느끼는 한계 때문에 원서에 대한 욕망이 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번역에 분노하고 비문에 고개를 젓는 대신 원문을 읽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숨 쉬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누군가 대신해주길 기다린 건 아닐까 싶다. 게으른 독자의 탐욕을 채워줄 출판사, 번역가, 전문가의 노력에 기대고 산지 오래다.


너무 늦었지만 꼭 필요한 책을 만나 읽는 내내 반가웠고 논의의 출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는 ‘철학’의 자리에 문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등도 놓여야 한다. 에드워드 윌슨의 ‘consilience’를 최재천이 ‘통섭統攝’으로 번역하면서 벌어진 논쟁부터 의학, 법학 용어에 이르기까지 일본식 한자어로 중역된 거의 모든 분야의 용어들이 때때로 낯설고 이해를 방해하며 오독의 여지를 남긴다. 언어는 사물과 개념을 확정하고 의미를 포착하는 도구다. 한국어에 대응하는 마땅한 단어가 없으면 지식 체계가 어그러진다. 어떤 개념에 상응하는 정확한 용어는 학제 간에 통합과 발전의 기본적 토대다. 필자와 독자 사이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거나 모호한 지시 대상은 대상을 흐리게 하고 문해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처음 번역되는 개념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번역가, 학자에 의해 최초로 도입된 용어는 그대로 정착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혼란과 갑론을박의 비용은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철학이 그렇다. 누구나 쉽게 원전을 읽고 자기만의 ‘철학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2차 저작물에 의한 해설과 설명이 없으면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 철학은 ‘난해한 것’,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만들었다. 물론 지식은 일차적으로 체계적인 개념의 구조물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익히며 코끼리 다리를 더듬듯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하지만, 일상에서 활용되는 의미와 다른 개념으로 사용된다면 철학은 아득히 멀고 흐릿한 성안에 갇히게 되지 않을까.

책 전체 분량은 많지 않다. 철학 용어 14개를 골라 신우승이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용어를 제한하면 김은정과 이승택이 반론을 한 후 신우승이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주장-반론-재반론’의 과정이 흥미롭고 각자의 생각이 보태져 논의가 확대된다. 그렇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제안된 용어가 정답은 아니다. 이 책은 이런 논의의 촉매로서 충분하다. 이런 논쟁은 계속 이어져야 마땅하며 궁극적으로 한국어로 철학하기가 가능해져야 한다. 철학뿐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의학, 법학, 역사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다. be동사가 없는 한국어에서 ‘존재’는 ‘이다’와 ‘있다’로 번역해도 충분할까. 객관적, 형이상학, 인식하다, 공리 등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용어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일은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하는 기분이 든다.

철학이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라면 그 도구인 언어부터 명확해야 한다. 논리적인 사고, 이성적 판단은 수많은 생각과 생각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사유의 도구인 언어는 발화된 순간 청자에게 이해와 오해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행동으로 증명되고 결과로 나타나기 전까지 그 숱한 혼란은 모두 개념의 혼란과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짧지만 강렬한 책은 ‘필수’적이며, 독자에서 충분히 만족감을 준다. 책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신우승, 김은정, 이승택은 공교롭게도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대학원과 박사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니 출발선에서 습관적으로 개념을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 아니다. 질문과 의심의 학문인 철학에서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논쟁이 이런 식으로라도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싶다. 함석헌 등 순우리말로 철학하기 운동을 벌인 선배들이 없지 않으나 오히려 낯선 순우리말이 철학에서 멀어지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서양 철학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과 개념이 어떻게 갈무리되는지는 오로지 번역에 따라 달라진다.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 정확하고 분명한 한국어가 통용됐으면 좋겠다. 게으른 독자의 소망은 누군가에 의해 조금씩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이렇게 고민하고 땀 흘리는 분들의 수고에 경의를 보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읽고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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