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얼굴들 - 빛을 조명하는 네 가지 인문적 시선
조수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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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빛이다. 우리가 눈으로 구별하는 모든 사물은 빛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반사된 색으로 컬러를 구분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고유의 빛깔로 오해한다. 태양과 조명처럼 발광체를 제외하면 모두 반사체에 불과하다. 스스로 색을 만드는 게 아니라 흡수할 수 없는 색을 되비칠 뿐이다. 우리는 사과를 볼 수 없다는 선언부터 생각을 뒤집고 관습적 사고에 경종을 울린다.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지 기능이 얼마나 오해의 산물인지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낯설다. 본다는 행위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진실이라 믿지만 눈과 빛을 이해한 후에는 모든 게 의심스럽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들은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빛으로 세상을 읽는 조명디자이너 조수민의 『빛의 얼굴들』은 개인적인 취향을 저격한 책이다. 전복적 사고, 낯설고 신선한 관점, 새로운 지식과 정보, 대상에 대한 저자의 애정,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읽고 싶은 책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 조수민은 빛과 조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 오랜 ‘업력’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공부와 관찰은 객관적 설명만으로도 읽은 이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깊은 관심을 유도한다. 빛은 직진한다는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달이 반사체라는 사실까지 빛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며 저자는 빛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특히, “이 시간 동안 이 각기 다른 두 가지 하늘빛은 하늘을 뒤덮으며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 근사한 장면을 연출한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이 땅 위의 모든 존재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 주는 이 아름다운 빛의 시간을 우리는 ‘골든아워Golden hour’라고 부른다.”는 설명에 공감하며 하루에 두 번 지구가 빚어내는 빛의 향연에 공감했다. 단순히 석양을 좋아한다는 시각적 현란함을 넘어 골든 아워가 주는 위로와 감동이 인간의 생체 리듬과 맞물려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골든 아워 : 태양이 뜨고 지기 약 30분 전후, 일광이 금색으로 빛나는 황혼의 시간을 일컫는 말. 사진, 영상,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 불리기도 한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청취율이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 또는 ‘심장마비나 호흡 정지, 대량 출혈 등의 응급 상황에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직사광과 천공광에 대한 설명은 집안 곳곳에 천편일률적으로 배치된 형광등과 간접 조명 효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밝기에 따른 느낌과 분위기는 빛의 색감, 눈의 피로, 사물의 형태까지 영향을 준다. 맑은 하늘에 햇빛이 쨍한 날과 회색 구름으로 뒤덮여 흐린 날의 차이는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그 의미와 활용은 인공 조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의 99퍼센트는 빛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100퍼센트는 빛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라는 조명 디자이너 제니퍼 딥턴이 새삼스럽다. 읽을수록 우리가 아는 빛과 내 삶에 영향을 주는 빛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빛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빛이 공간을 채우는 방법, 공동체 사회에 미치는 빛의 영향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높지도 크지도 않다. 감성에 호소하지도 않고 개인적인 취향을 직접 드러내는 부분도 많지 않다. 오랫동안 조명을 디자인하며 생각하고 느낀 빛에 대한 철학과 좋은 조명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주장과 설득이 아니라 설명과 조언에 가깝다.

수천만 원짜리 루이스 폴센의 조명이 아니어도 좋다. 수입산 명품 조명이 아니면 어떤가. “좋은 조명은 비싸지만, 좋은 빛은 비싸지 않다.”라는 저자의 말은 비싼 조명을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빛 환경을 얻는 것도 아니며, 좋은 빛을 얻기 위해 무조건 고가의 조명을 사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조명의 재료와 가격이 아니라 공간에 어울리는 조명의 위치와 배열이 좋은 빛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무와 동식물의 기름, 석탄과 석유의 시대를 지나 전기로 빛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인류의 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으며, 어둠을 밝히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부유층만의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빛 공해가 인류의 밤을 괴롭힌다. 눈부시게 밝고 환한 빛은 문명발달을 상징한다. 그러나 불면과 각종 질병을 유발하기도 하고, 자연의 순환에 맞춰진 인간의 생체 리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적절한 빛, 좋은 조명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빛과 조명에 대한 앎이 사물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더 나은 삶에 영향을 준다. 조수민이 말한 빛의 얼굴들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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