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짜리 오페라.남자는 남자다 을유세계문학전집 54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길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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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없다. 읽어야만 하는 책이 없는 것처럼. 사건의 우연성은 근대소설의 특징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송곳이다. 도서관 서가를 산책하다 우연히 집어 든 책 『서푼짜리 오페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작이다. ‘남자는 남자다’가 앞에 실렸으나 제목은 순서가 바뀌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에이비드 핸드의 말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책에 손이 가는 건 관심과 선택의 과정을 거치는 희박한 확률이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사건이다. 우연을 부풀려 운명을 창조하고 필연을 강조하려는 태도만 버린다면 해석 없이 사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시간은 흐르고 세계는 변하며 인간은 죽어간다. 극단적 허무와 염세주의가 아니라면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를 수용하고 적응하며 사는 게 모든 생명의 본질이다.

우선 앞에 실린 「남자는 남자다」에 관한 이야기다. 정체성을 포기하고 집단 속에 편입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갈리 가이의 내면 풍경 대신 외부적 효과와 상황적 아이러니를 적극 수용한다. 집단의 일원으로 개조된 갈리 가이는 자동화기 분대원 누구보다 가장 군인다운 군인, 즉 전쟁 기계로 변한다. 개인의 정체성이 소멸하는 극한 상황이 전쟁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브레히트는 부품처럼 개인을 대체할 수 있는 군대조직의 비인간적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전혀 다른 존재로 변신 가능하며 집단 속에서 역할과 의미가 개인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이 작품은 여전히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묻는다. 사적인 존재로서 갈리 가이가 아니라 집단 속에서 갈리가이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나약한 개인이 사라지고 자기 역할과 임무에 충실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남자’는 진정한 ‘남자’가 되는 걸까.

브레히트가 이 비인간적 파편적 존재로서 개인을 긍정하는 이유는 세계 변혁의 가능성 때문이다. 집단 속의 개인을 중시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은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삭제된다. 이후에는 반파시즘, 반군국주의적 경향이 뚜렷해진다. 진정한 사회주의 집단의 힘은 개인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같은 맥락이지만 지향점과 방법에서 차이가 날 뿐이 아닌가. 여러 차례 개작되었다고 하나 작품 외적 영향과 브레히트의 사상적 변모를 모두 추적하며 읽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통해 사회 변혁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작품 곳곳에 낯선 시도로 반영되어 있다.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고 내용은 형식을 창조한다. 인도 주둔 영국군 자동화기 분대의 활약상은 거절 못하는 사나이 갈리가이가 제라이아 집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맞물려 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폴리 살아 있는 가장 비속한 것, 가장 연약한 것이 인간이야.”라는 직설 화법이 굳이 갈리 가이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읽히지는 않는다. 등장인물 누구도 ‘연약함’에서 자유롭지 않다. 산전수전 다 겪은 군인부터 생선파는 여인까지 그렇다. 각자의 연약함은 신념과 가치의 혼란이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 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게 있을까. 정치적 이념, 종교적 신념, 삶의 가치관 모두 그렇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과의 관계는 잔인한 형벌이다. 반면 갈리 가이처럼 적응형 인간의 민낯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어쩌면 그것이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우리의 내면에 가깝기 때문이겠지만. 어느 쪽이든 극단은 중도를 이기지 못한다. 중용의 도는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1928년 베를린에서 초연된 『서푼짜리 오페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을 거뒀고 브레히트를 세계적인 극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미 산업혁명이 진행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병들고 타락한 시민사회의 질서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거지 두목과 갱스터의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경찰과의 유착관계,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관점 등 일그러진 사회의 단면들이 폭로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의와 불의는 같은 옷을 입고 서로의 얼굴을 가린다. 그럴듯한 외피를 걸친 사람들의 속내가 자본주의 욕망과 닿아 있고 그것은 다시 시민사회 질서를 깨는 부도덕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찰이 도둑과 내통하고 사랑도 상품처럼 사고파는 대상이라는 사실이 시민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피첨과 매키스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며 착취를 일삼는다. 그 대상은 물론 선량하고 힘없는 시민과 동료다. 거지, 창녀, 깡패로 표현된 그들은 사실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그들이 겪는 관계 양상과 자본으로부터의 소외현상은 고위공무원, 대기업 사원, 전문직 종사자의 관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생존을 위한 경쟁,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외면하는 모습은 시대의 변화가 무색하게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사회의 도덕적 기본 원리인 가족, 결혼, 신뢰도 결국 물질적 토대를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설정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자본과 권력이 정의와 공정의 가치까지 독점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다. 브레히트의 희곡이 여전이 무대에 올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고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은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의 영향을 문학에 반영했다. 독자가 현실의 모순을 깨닫고 변화가 시작될 거라는 나이브한 생각은 낭만적 사랑만큼 허망해 보인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혁명에 대한 열정과 세계 변혁을 추동하는 힘은 브레히트의 꿈에서 출발했던 게 아닐까.

극 중에 삽입된 노래, 서사극과 비유극의 형식적 실험 등 전통에서 벗어난 도전이 브레히트를 또 다른 면에서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극중극, 화자의 등장 등 낯선 요소는 이질적이지 않고 새로움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면이다. 물론 초연될 당시에 이런 요소는 파격에 가까웠을 테지만 낯설게 하는 효과는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즐거움이다.

이 작품은 존 게이의 『거지의 오페라』를 원작으로 했다. 극의 중심축을 이루는 칼잡이 매키와 조나단 제레미아 피첨의 갈등은 서민들의 아귀다툼 같은 비극이다. 가진 자들의 싸움이 아니라 없는 자들 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그들은 물론 자본을 이용해 권력과 결탈하지만 결국에는 파멸에 이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은 삶을 불편하게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한 시스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들만의 잔치와 패권 놀음이 때때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맹목적 지지와 몰입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분노는 희극에 가깝다. 서푼짜리 오페라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 혹은 교훈이 있다면 현재를 사는 각자의 태도와 방법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차피 모든 해석과 평가는 작품을 거친 개인적 트림에 불과한 것.

무대 뒤에서

도대체 인간은 무얼 먹고 사나요?

도대체 인간은 무얼 먹고 사냐고? 시시각각

사람을 괴롭히고, 벗겨 먹고, 덮치고, 목 졸라 퍼먹지.

인간은, 자신이 인간임을

철저하게 망각함으로써만 살 수 있어.

- 2막 6장,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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