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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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ESG 경영(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말)’이나 ‘RE 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은 이제 일상적인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기업 경영이나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탄소 중립 등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 사이에서 심각한 디커플링 현상을 경험한다. 녹색성장이라는 허구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사이토 고헤이는 ‘탈성장’을 주장한다.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급진적이다. ‘성장’을 멈추자거나 ‘발전’은 곧 공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친환경, 사회적 책임을 기업 경영에 도입하려는 노력은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전지구적 환경문제는 생각보다 시급하고 중요해졌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피부에 닿을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종이컵을 쓰지 않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거나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정도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이토 고헤이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냉소한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하게 설득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건 태풍이 아니라 따뜻한 태양이라는 우화가 때때로 시기를 놓치고 후회를 만든다. 행동과 실천은 사랑처럼 타이밍이 중요하다.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새로 시행되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최대 공동목표인 ‘SDGs(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또는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sms 현대판 아편이라는 말로 현 상태의 자본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후변화와 제국적 생활양식에 대한 객관적 자료는 충격적이다. 긍정적, 낙관적 전망의 토대는 대체로 과학기술의 발달이 환경문제에 실마리를 제공할 거라는 환상이다. 계속해서 그럴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탈성장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마르크스의 말년 저작들은 생소하다. 갈등과 대립은 이념과 세대, 빈부와 성별을 넘어 경쟁과 각자도생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조건이 된 지 오래다. 세계 경제 10대 강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후 변화와 환경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속도와 방법의 문제가 남는다.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당황스럽게도 정치적 이념도 개입된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가 아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치를 대가는 참혹할지도 모른다. 지나친 위협이나 공포심리를 자극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탈성장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물론 이상주의에 가깝다. 방법이 틀렸거나 적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복잡한 이해관계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더디게 할 것이고, 나름의 이론가들의 굳건한 신념은 정확한 미래 예측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지만 이 책은 논의의 출발로 적당해 보인다. 기후 정의라는 ‘지렛대’를 이제 현실에 적용해보려는 단계다. 2000년에 인류의 문명을 인신세(*인신세 : ‘Anthropocene’에서 ‘anthropo-’는 ‘인류’를, 지질학적 시대를 지칭하는 ‘-cene’는 ‘새로운’을 뜻한다. ‘인류세’라고 옮기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역어가 명확히 합의되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의도를 존중해 역자가 ‘인신세(人新世)’라고 옮겼다.)로 분류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파울 크뤼천의 제안이었다.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를 명명한 것이다. 인류세든 인신세는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먼 훗날, 아니 우리가 사는 지질시대의 종말을 앞당기는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하지 않다는 저자의 지적에 귀 기울일만하다.

기업 경영자, 정치인, 행정가 등 정책을 입안하고 경제를 운용하는 주체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합의가 없으면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전환하기 어렵지 않을까. 문제는 인식하고 있으나 해법은 요원하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쉽게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가 어디 한둘일까마는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고민은 모두의 현실이고 그 결과는 생존과 직결된다. 탈성장 자본주의를 외치는 저자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우리가 경험한 대로 ‘그렇게’ 돼 버린다.

탈성장 코뮤니즘의 추춧돌 ① - 사용가치경제로 전환

-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경제로 전환하여 대량 생산 ․ 대량 소시에서 벗어나자.

탈성장 코뮤니즘의 추춧돌 ② - 노동 시간 단축

-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활의 질은 높이자.

탈성장 코뮤니즘의 추춧돌 ③ - 획일적인 분업 폐지

- 노동을 획일하게 하는 분업을 폐지하여 노동의 창조성을 회복시키자.

탈성장 코뮤니즘의 추춧돌 ④ - 생산 과정 민주화

- 생산 과정에서 민주화를 진행하여 경제를 감속시키자.

탈성장 코뮤니즘의 추춧돌 ⑤ - 필수 노동 중시

- 사용가치경제로 전환하여 노동집약적인 필수 노동을 중시하자.

경제의 규모 축소scale down와 속도 둔화slow down, ‘가속주의accelerationism’가 아닌 ‘감속주의deaccelerationism’로 요약되는 사이토 코헤이 주장이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더라도 우리는 모두 호흡을 가다듬고 심각하게 현실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 누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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