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는 착각 -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으로 풀어낸 마음의 재해석
닉 채터 지음, 김문주 옮김 / 웨일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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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우리 신체에서 1.4 킬로그램에 불과하다. 현대 의학은 물질적 존재로서 몸의 각 부분을 해부해서 그 역할과 기능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의 작동방식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복잡한 생각들은 시냅스를 비롯한 뉴런의 작용으로 선택과 판단을 이끌어 행동에 옮기게 한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본능적인 움직임은 물론 철학적 사고에 이르기까지 알 수 없는 경로를 거친다. 자유의지에 의해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한다는 자부심은 인간을 오만하게 한다. 다른 어떤 동물과 구별되어 자연을 지배한다는 착각.

닉 채터의 도발적인 주장이 담긴 ‘생각한다는 착각’은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급진적이다. 지금까지 밝혀낸 뇌의 비밀에 대한 과학적 판단과 무관하게 인간 뇌의 작동 방식은 평면적이고 표피적이란다. 심오한 정신적 깊이 따위는 없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내적 심연은 과연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에 불과한 걸까.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행동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든다. 다양한 인지 실험과 착시, 환상 같은 예시를 통해 우리의 통념을 박살 내는 저자의 말에 혼란스럽다. 무의식에 기반을 둔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은 허구에 불구한 것일까. 표피적 과정에 집중할 때 겨우 마음의 본질에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믿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영리하며 논리적인 생명체다. 심연으로부터 길어올린 생각과 이성적 판단이 인류의 삶을 진보시켰고 문명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기존의 믿음은 모두 잘못된 것일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아무리 설명하고 합리화해도 파편적이고 즉흥적인 선택에 불과하다니! 절체절명의 순간, 깊은 고뇌와 사유를 거친 행동이 그 결과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유 찾기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란 말인가.

철학자이자 정치 운동가인 버트런드 러셀은 1901년 가을에 감정적 통찰력의 순간에 관한 인상적인 글을 썼다. “나는 어느 날 오후 자전거를 타고 나갔고, 시골길을 따라 달리는 도중에 불현 듯 내가 알리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 순간까지도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이 사그라질 수조차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러한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바로 파멸이다.” - 151쪽

러셀의 자서전에 소개된 일화는 다양한 장면에서 인용된다. 저자는 이 장면이야말로 “탐구의 깊이와 풍부함과 무한한 범위는 모두 완전히 속임수다. 내면세계 같은 것은 없다. 찰나적인 의식적 경험의 흐름은 광활한 생각의 바다 위로 반짝거리는 수면이 아니라, 그냥 그게 전부다.”라고 주장한다. 꿈의 분석과 뇌 촬영에서 진짜 동기를 찾을 수 없고 과정과 결과를 밝혀내는 어설픈 설명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또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음의 깊이라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의 절반을 할애한다. 감정, 상상력, 선택 등 우리의 생각은 모두 단편적이고 즉흥적이라면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의식과 무의식은 경계가 없다. 의식적인 판독과 그 판독을 만들어내는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우리 생각을 해부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뇌가 저지르는 속임수의 희생자들이다. 우리 뇌는 순간적으로 색깔과 사물, 기억, 신념, 선호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지어내며, 합당한 이유를 술술 뱉어내는 멋진 즉흥 기관이다. …… 마음은 평면이다. 그 표면이 그곳에 존재하는 전부다.”라는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지만 반박할 증거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몸부림쳤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떻게 이런 감정과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건 순전히 착각에 불과한가. 겨우 나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타인과 세상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겨우’가 아니라 그 착각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인간 존재에 대한 궁극적 비밀일까. 겸손과 두려움은 앎의 세계를 들여다본 자들이 받는 형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모든 게 혼란스럽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오직 모를 뿐이라고 일갈한 스님의 깨달음을 받아들이더라도 다음이 궁금하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는 모두 자기 합리화 과정에 불과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이 너무 힘겹다. 저자의 말대로 마음이 평면이니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 갈 수 있는 마지막 문장도 합리화에 불과한 게 아닌가.

생각의 ‘감옥’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고, 만들어진 것처럼 해체될 수도 있다. 마음이 평면이라면, 우리가 마음과 삶과 문화를 상상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감동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또 현실로 이뤄낼 힘을 지닌 셈이다. -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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