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궁리하는 과학 6
자크 모노 지음, 조현수 옮김 / 궁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다. _데모크리토스

17세기 과학 혁명은 인간의 사고체계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화 구조를 변동시켰다. 신 중심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합리와 이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어떤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밝혀지면 필연적인 이유가 설명됐다. 종교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인간의 사유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전체가 아닌 부분에 천착했다. 집단이 아닌 개인, 외부가 아닌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시적 세계관은 거시적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20세기에 눈부신 성과를 거둔 분자생물학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르빈 슈뢰딩거)를 밝혀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겨우 20종의 아미노산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라는 사실은 양자역학이 증명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한 놀라운 비밀을 신의 영역까지 침범한 것으로 오인하게 한다.

자크 모노의 논리는 명확하다. 미시세계의 우연이 거시세계의 필연을 만든다는 주장이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를 만들어냈으나 생명체의 본질은 불변적인 자기복제의 실현에 있다. DNA에 의한 정교한 자기복제의 과정에서 ‘요란’스런 일이 벌어진다. 즉, 변이라 불리는 우연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지지만 종족 보존과 증식이라는 필연적 의도에 대한 저항 능력이 바로 변화, 즉 진화를 이끈다. 세대를 거쳐 자기 구조를 복제하는 불변적 태도야말로 생명체의 본질이며 필연적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일단 한번 일어난 변이는 또다시 돌처럼 DN에 새겨져 자기복제로 이어지는 철저한 순환구조는 확실성에 기반한 필연의 세계다. 그렇다면 ‘불확정성 원리’에 따른 우연한 변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도대체 어떤 의도로, 누가 일정한 방향의 변이를 용인하는가. 진화의 비밀은 자연선택에 있고 수많은 변이 중에 선택받은 변이가 다음 세대의 DNA에 기록되는 방식으로 생명체의 진화가 계속됐다는 이야기는 어떤 신화보다도 아름답고 신비롭다.

인간은 아주 오랫동안 자연을 지배하며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필연성이 지배하는 세계는 예측 가능한 삶을 꿈꾸게 한다. 안전하고 편안한 미래는 확실성의 세계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모두 인간은 고귀한 존재이며 이 땅에 태어난 필연적 이유와 의미를 설파한다. 철학 또한 다르지 않다. 존재론부터 형이상학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논리를 따라가며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사유 방식을 점검한다. 필연적 인과관계가 지배하는 과학의 세계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생명체의 출현, 인류의 탄생이 우연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자크 모노의 충격적 선언은 그 여파가 아직도 진행 중이 아닐까.

1970년에 나온 이 책은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반과학’ 선언이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 과정이 모두 필연이 아닌 우연의 결과라니! 그럼 인간의 삶은 어쩌란 말인가! ‘너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이다’라는 정호승의 시구절 따위는 개에게나 줘야 할까. 그 혹은 그녀의 만남이 운명이 아니라니 말인가. 한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숭고한 과정이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른 우연일 뿐이라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혼돈과 대환장 파티로 인류를 초대한 자크 모노의 용기가 부러운 게 아니라 철학, 종교, 정치, 윤리, 문화 등 모든 학문과 사유의 영역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 관점의 새로움이 놀라웠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 세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의 틀로 짜인 고유한 우주라고 생각한다. 자유와 평등, 인권 같은 개념이 인류 보편적 가치로 통용되는 이유는 여기에 바탕을 둔다고 하면 과언일까. 어쨌든 개별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은 물론 공동체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점검과 성찰에도 ‘우연’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부모가 스펙인가, 장애는 선택인가, 여성은 운명인가, 나이는 벼슬인가……. 심리적 귀인 이론은 단순히 비합리적 태도가 아니라 우연과 필연에 대한 외면, 불안과 무지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일부로서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한편의 거대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일까. 자크 모노의 이야기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성찰을 넘어 인류 사상사를 개척한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를 번역자 조현수는 이렇게 말한다.

“저자는 그 어느 시인보다도 인간의 불행과 정신적 방황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그 어느 구도자보다도 경건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진리를 추구하고 그 어느 철인보다도 밝은 혜안으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한다. 예술과 종교와 철학, 이 모든 것을 죽인 곳에서, 이 모든 것의 감수성과 경건함과 지혜를 합쳐 보다 더 커다란 진실 속에서 함께 완성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고 스스로가 실천한, 진정한 과학의 힘일 것이다. 진정한 과학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의 진정한 의무를 수행하는 길이다.”(옮긴이의 말)

마그리트가 삽화를 그린 로트레아몽 백작의 <말도로르의 노래>(1948)에는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 위의 우산이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아름다워”라는 구절이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좋아했다는 이 구절은 곰표 맥주처럼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대상의 콜라보레이션이 창조적 미학을 드러낸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관습적 사고를 버릴 때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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