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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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네마 천국》(1988)에서 내게 꼽는 명장면은 고향에 돌아온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돌려보는 장면이다. 검열 아닌 검열로 관객들은 볼 수 없었던 영화의 숱한 키스 장면들. 엔니오 모리꼬네를 통해 OST를 듣기 시작했고 영화에 깊이 빠지는 계기가 된 영화였다. 지나간 모든 게 아름답게 기억될 순 없으나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남은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두근거림’을 상기시키는 최승자의 산문이 시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에 눈 뜬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마치 프로이트의 마들렌처럼.

현실 밖으로 걸어 나간 최인훈처럼 신비주의에 빠진 최승자는 가늠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된 산문을 아껴 읽으며 빛바랜 흑백사진을 더듬었다. ‘이 시대의 사랑’을 읽던 청년의 눈으로. 시인에게 부여된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며 이 시대를 살아온 그녀의 삶에서 현실은, 그리고 그 너머에서 찾고 싶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젊은 시절의 일기장 같은 산문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얼굴이 따뜻해질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 정해진 길을 오차 없이 걷는 즐거움, 정해 놓은 목표에 도달하는 성취감, 성공을 향한 맹목적 질주 등과 거리가 먼 낭만과 치기, 냉소와 허무로 가득했던 청춘이 없는 사람의 인생은 부럽지 않다. 현실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경계인으로 살아갈 숙명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으나 시인은 적어도 빼어난 외모나 솜사탕 같은 부드러움으로 승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최승자 정도의 카리스마가 없다면 표지에 얼굴을 드러나지 않았으면 싶은 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조지오웰을 ‘나는 왜 쓰는가’를 오용하는 사람처럼 최승자를 낭만적 연시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나름의 방식이 있을 터. 시인의 산문은 남다른 통찰이나 미려한 문장 읽는 재미와 거리가 멀다. 시인의 시를 읽은 독자들이나 기웃거릴 만한 시인에 대한 존경과 팬심 정도면 충분하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지 않고 이 산문집을 읽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

시인은 “그만 쓰자 끝”이라고 선언했지만, 나는 이제 조금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깊이 읽고 한 번 생각하며 ‘목적’과 ‘태도’를 돌아본다. 불확실한 희망보다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선택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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