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학과지성 시인선 333
김광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역 광장 앞에서 불에 탄 전경 버스를 바라 본 것은 버스 안에서였다. 시위 군중에 막혀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승객들은 그대로 앉아 마냥 기다릴 수도, 내려서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버스 차창 밖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똑똑히 기억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10대 소년의 눈에 비친 87년 6월은 혼돈속의 질서였다. 무엇인지 모를 열기와 함성들, 거대한 강물처럼 군중들은 물결치듯 조금씩 움직였다. 광화문 네거리 빌딩에는 건물마다 아저씨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길가 한켠에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흔드시던 하얀 손수건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6․10 항쟁 20주년을 맞이해서 누군가가 쓴 한겨레 칼럼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인용했다. 희미한 옛사랑도 아니고 그 그림자를 바라보아야하는 현실은 무기력하기만하다. 4․19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가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희미하게 보인다. 87년 6월이 희미한 게 아니라 그 시대정신과 민중들의 열망과 가슴속의 뜨거움이 희미해졌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가장 큰 불행을 감지한 것처럼 시인도 소시민의 뒷모습을 노래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2007년 시인은 정년퇴직을 했고 드디어 전업 시인이 되었다. 노년의 김광규 시인을 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 꼼꼼히 들여다본다.

  시집은 제목이 내용을 집약하는 경우가 있고, 부분으로 전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김광규의 <시간의 부드러운 손>은 제목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고교시절에 가슴에 담았던 수많은 시인들 중 오규원은 세상을 등졌고, 황동규나 김광규는 정년을 맞았다. 세월은 모두를 변화시키고 사람도 시대도 다른 무언가로 바꿔 놓는다.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홉 번 째 시집을 펴내는 시인의 목소리는 예전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다르면서 변하지 않는 숨결들이 편안하게 읽힌다.

춘추(春秋)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년 봄을 보냈다
힐끗 들여다본 아내는
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
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
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전통적으로 계절의 변화가 생의 변화를 대변한다. 봄에서 가을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단순한 세월의 흐름이 생의 진리를 안겨준다는 선(禪)적인 명상으로 깨달은 것도 아니다. 무심한 순간들이 생활 속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다. 원래 그러했으나 인식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산수유 꽃피는 소리보다,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보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화자와 허튼소리 말라는 아내의 눈빛이 떠올라 한참 웃었다. 일상 속에 소소한 마음의 갈피를 잡아내는 시인의 매력은 여전하다.

  생활 속에서 길어 올린 수많은 시들이 김광규 시의 특징으로 분류된다. 그만큼의 의미와 한계도 지니고 있다. 확장되지 못하고 의미의 영역이 좁아질 위험성이 있다. 시야와 관점이 폭넓다고 해서 좋은 시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문제가 일반화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만고만한 키 높이로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느낌을 받는다. 한 번쯤 발로 툭 건드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을 거울’과 같은 시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알의 모레 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고 한 윌리엄 브레이크가 생각나게 하는 명편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난 후에 갈잎 손바닥에 고인 한 숟가락 만한 빗물이 거울이 되어 세상을 비추고 나를 비추고 온 생애를 담아낸다. 무심하게 던지는 한 마디가 ‘마지막 빗물’이라는 표현과 함께 시인의 전 생애 혹은 독자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가을 거울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고 난 뒤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후박나무 잎
누렇게 바래고 쪼그라든 잎사귀
옴폭하게 오그라진 갈잎 손바닥에
한 숟가락 빗물이 고였습니다.
조그만 물거울에 비치는 세상
낙엽의 어머니 후박나무 옆에
내 얼굴과 해와 하늘이 비칩니다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갈잎들 적시며
땅으로 돌아가는 어쩌면 마지막
빗물이 잠시 머물러
조그만 가울 거울에
온 생애를 담고 있습니다


  이 죽음에 대한 탐구와 ‘마지막’에 대한 성찰들은 결국 삶과 죽음으로 귀결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소멸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르든 소멸이라고 부르든 사라짐이라고 부르든 ‘출입통제선’이라는 경계를 이룬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상관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 그 미련과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다. 그것은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경계 너머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공포는 무지에서 올 때가 많다. 삶과 죽음의 그 분명한 경계를 출입통제선 이쪽과 저쪽으로 나눠 놓은 솜씨도 솜씨지만 그 무심한 눈길이 오히려 두렵다. 엉뚱하게도, 이렇게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날에는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조용히 눈감고 싶다는 시와 무관한 개인적인 욕망! 항상 생활 속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 자웅동체처럼 한 몸으로 묶여있는 삶의 비극성은 ‘출입통제선’ 언저리에서 서성거린다.

생사(生死)

방독면 쓴 방역요원들이 계사(鷄舍)에
사정없이 분무기로 소독약을 뿜어대고
닭과 오리 수천 마리를 비닐백에 잡아 넣어
한꺼번에 살(殺)처분한다
조류독감 때문이다
출입통제선
바깥의 냇가에는
어디서 날아왔다
천둥오리들 한가롭게 무자맥질하며 놀고
백로 몇 마리 한 발로 서서
명상에 잠겨 있고


070614-0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