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 - 새로운 아름다움이 세상을 지배한다 살림 H classic 3
심혜련 지음 / 살림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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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학적으로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해 논하는 전통 미학과는 달리, 매체 미학은 예술 작품, 또는 예술적 미적 감응을 주는 대상이 어떻게 지각되고 수용되는가를 다룬다. - P. 29

  발터 벤야민이나 아도르노의 이론에 정통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들의 논문을 잘 씹어 줄 수 있는 책들이 필요했다. 미학의 전통적 이론에서 파생된 매체 미학은 과학 기술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영화나 사진이라는 장르가 예술로 인정받기까지 지난했던 세월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만 우리는 우선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 매체 미학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영화나 사진의 무한 복제 시대에 돌입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술이 어떤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가였다. 벤야민이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나 사진을 옹호할 수 있었던 근거는 분명하게 읽히지 않는다. 다만 시대의 흐름과 문화적 충격 속에서 예술에 대한 개념과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이라는 정보 혁명으로 이제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또 하나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이원화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 메트릭스가 경고한 세계가 바야흐로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장자의 나비가 현실인지 꿈인지 알수 없는 원본 없는 이미지와 모방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할 때가 있다. 심혜련의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은 매체 미학을 중심으로 이러한 궁금증들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필름 영화와 사진 시대를 넘어 이제는 디지털 이미지를 수용하는 관객들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중 최근에 <300>이라는 영화가 주목을 끌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승리라는 평가와 촬영과정이 소개된 것을 보았다. 이제는 영화 속 장면조차도 이차적인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장면들을 관객들에게 이미지로만 전달되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가 어차피 현실과 거리가 먼 하나의 환상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기능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의심하는 수준에 이른다.

“벤야민은 영화관에서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접하는 관객들은 분산적 지각과 시각적 촉각성에 의해 영화를 즐기면서 또 비판할 수 있다고 믿었다.(67페이지)”는 말은 영화라는 예술의 무한 가능성을 예고한 듯하다. 일상의 공간과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일종의 프리즘 역할을 하는 것이 영화라면 인간의식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영역을 재발견하기 위한 예술적 장치가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시간과 공간이 사이버스페이스로 옮겨 간다. 움직이는 포착해야 하는 긴장감 속에서 감상하는 예술을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야하는 것일까?

현재 디지털 매체 예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수용자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는 상호 작용적 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버스페이스, 즉 온라인에서의 작품 전시다. - P. 143

  이 책에서는 주로 디지털 매체 예술에서 전통적 회화나 상호작용적 예술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이나 매체 미학에 수용될 수 있는 익숙한 개념들을 잘 녹여서 설명하고 있지만 새로운 개념이나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마지막 장에서 영화 <올드 보이>를 분석하고 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실제 영화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읽을 만하다.

TV는 시계이자 달력이고 교회이며 친구이자 애인이다.(올드보이) - P. 164

  영화 <올드 보이>가 선태된 이유는 TV라는 매체 때문이다. 오대수는 오로지 TV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한다. 이우진의 연인이 강물로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찍힌 선명한 사진들은 앨범이 된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사이의 관계를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개념을 적용시켜 적절하게 풀어내는 방식도 재미있다. TV와 사진이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방법이나 분석적 태도는 <올드 보이>를 보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것들이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의 개념과 방법론을 알아야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공감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눈부신 날에>에서 보여주었던 새로운 가족의 개념과 삶의 이유들은 사이버스페이스가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들이다. 박광수의 의도가 어떠하든 우리에게 눈부신 날은……



070427-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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