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모든 얼굴 - 현대 회화의 사유
이정우 지음 / 한길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지난 겨울 마그리트전에서 느낀 것은 일차적으로 원본에 대한 강렬함이었다.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나 다른 책들을 통해 만났던 그림들을 볼 때마다 원본 없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마치 영화배우를 스크린이 아닌 실제로 만났을 때의 당혹감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미지를 통해 원본의 아우라를 잃어버린 예술을 접하는 일은 감동없는 그림 읽기에 불과할 때가 있다. 이런 그림, 혹은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아카데미 원장 이정우는 <세계의 모든 얼굴>에서 현대 회화의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 철학의 개념들과 현대인들의 사유 방식을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보여준다. 그 창은 맑고 투명한 창이 아니라 왜곡되고 구부러진 볼록 렌즈나 오목렌즈와 비슷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현대 회화의 사유도 읽을 수가 없다.

  그림을 통해 현대사회의 사상의 흐름을 읽어내고 세계의 면들을 밝혀내는 작업은 단순한 회화와 철학의 만남을 넘어서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는 또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분석틀은 세상에 대한 잣대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의식에 대한 것일 수 있다. 안과 밖을 통틀어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분석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틈을 메우는 작업의 결과물로 이 책을 이해하면 안될까 싶다.

의미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그것을 회화로 표현한 사람이 르네 마그리트이다. 마그리트는 현대 회화에서 유니크한 위치를 차지한다. - P. 116

마그리트는 하나의 면을 찾는데 집중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면들을 가로지르면서 世界 자체를 찾아간 사람이다. 즉 면들을 가로질러 보다 입체적인 존재론을 추구한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마그리트의 회화는 회화에 대한 회화, 메타회화, 회화의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 117

  예를 들면, 마그리트의 그림들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이렇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림을 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이 모든 것일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는 책이 <세계의 모든 얼굴>이다.

  그림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엿볼 수도 있지만 제공된 이미지들은 지각된 것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회화에서 재현이냐, 표현이냐를 따지는 것은 논재의 의미가 없다. 회화의 역사를 통해 世界(유일무이한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태도를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철학의 목표가 구체적이고 특정한 장면을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규명이나 사유에 있지 않고 世界에 대한 모든 얼굴들을 보여주는 작업이라면 철학과 회화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공통된 운명을 지닌 듯하다. 그 면들을 찾아보는 것은 물론 감상자의 몫이고 즐거움이고 권리겠지만 철학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내면세계의 대부분은 외면세계에서 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상상은 지각에 근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상상이란 지각된 것의 변형이다. - P. 33

회화는 재현/표현의 이분법으로 이해될 수 없다. 회화는 언제나 世界(유일무이한 전체로서의 세계)의 무한한 얼굴들을 드러내는 작업인 것이다. - P. 34

  그림이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을까? 철학아카데미에서 사흘에 걸쳐 진행된 강의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 놓은 이 책은 우리가 익수하게 접했던 수 많은 그림들 속에서 미처 읽어내지 못한 특별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특히 인상파 이후 입체파와 추상화가 대표되는 현대 회화의 난해함에 대한 거친 도전이기도 하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이 시대의 회화가 가진 맹목성과 불안감을 적절하게 분석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 그림들과 이런 종류의 책들이 모두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유효하다는 말이다. 누가 알겠는가, 회화의 독창성과 활기가 여기서 끝나버릴지. 그러나 회화의 존재 탐구는 계속되리라고 나도 믿는다.

오늘날 회화는 예전과 같은 독창성과 활기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같다. 그러나 화가들의 영혼이 죽지 않는 한 회화의 존재 탐구는 계속 되리라고 믿는다. - P. 195


070407-0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