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 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 지음 / 심설당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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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권의 소설이 전하는 위력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알 수도 없다. 문학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은 논란이 있겠지만 문학을 단순히 소설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이 현실 세계에서 갖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클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그만큼 많다.

  소설 무용론을 주장했던 과거의 조선 시대 선비들도 있었지만 서사 구조가 탄탄한 소설의 매력은 여전하며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장르의 내용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소설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쾌락 욕구에 대한 대리 만족으로서 소설을 읽는다는 견해를 밝힌 비평가도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소설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력과 꿈을 심어주기도 하고, 비참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소설을 통해 울고 웃었던 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1920년에 발간된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소설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낸 고전이다. 문학이론을 다룬 책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그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하지만 용어 자체가 낯설고 문장의 구성과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우저의 명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근세편을 번역했던 반성완의 85년도 번역본으로 역자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는 없지만 역자 스스로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음을 군데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어 원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문학 전공자들이나 철학 전공자들도 반쯤 읽다가 던져버린다는 책의 소개가 무색하다.

  문학을 전공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철학적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보는 일은 또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며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지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루카치가 이야기했던 소설 특유의 구체성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우매한 독자로서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확인했다.

삶이란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다 그러하듯 스스로를 넘어서 있는 일체의 초월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상대적인 독자성과 그러한 초월적 구속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불가피성과 필요불가결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 P. 50

  하지만 이렇게 소설과 무관하게 삶에 대해 선언하는 부분들이나 그 삶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예술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지만 역사와 철학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소설은 여전히 제멋대로 혹은 이 모든 것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버텨내고 있다.

서구의 문화 세계는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의 불가피성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논쟁적 태도 이외의 방법으로 이들 구조에 마주 서서 대항할 능력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 P. 166

  서구 사회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 태도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문화적 토대와 학문의 성향이 달라서일까?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는 ‘학계의 금기’를 넘어서는 일도 중요해 보이지만 그들과 다른 우리 소설의 구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외연과 내용을 확장시킬만한 동력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건과 역량을 갖춘 많은 작가들을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독자로서의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루카치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예술과 삶의 관계는 쉽게 말해질 수 없다. 애증의 관계로 이별할 수 없다면 항상 사이 좋은 연인관계일 수는 없지만 그들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소설을 바라보는 일은 항상 즐거운 일탈일 것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이론들을 잊어버리고 술에 취하듯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예술은 삶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의 태도를 취한다. - P. 77


07033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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