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과속 위반 스티커와 부고의 공통점은 상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현실 속으로 날아든다. 과속이나 주차 위반, 버스 전용차로 위반의 경우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내지만 부고는 훨씬 강한 충격으로 삶을 순간적인 혼돈에 빠트린다. 시공을 초월해서 과거를 헤매다가 현실로 돌아오거나 메트릭스 밖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친구의 부음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전해졌다. 오늘 오후에.

 죽음은 종교만큼이나 숭고하거나 거룩한 삶의 종착점이다. 연속적인 세계관에서 생각하면 죽음은 생의 연장이며 또 다른 삶의 형태일 수 있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생의 마감이며 존재의 소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야말로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의 고통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말을 한다. 나 살아 있다고, 그 사람이 죽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불교에 대한 오해와 종교 일반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은 불신과 갈등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래서 자신의 종교와 무관하게 종교에 대해 올바로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장 오래된 전통적인 불교도 우리에게 오해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호국 불교, 기복 불교로서 오로지 현실에서의 복덕과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경우 그 종교는 반드시 왜곡된 형태로 중생을 미혹하게 한다. 불교를 올바로 알고 이해하는 일은 종교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세일 뿐만 아니라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종교의 허와 실을 바르게 인식해야 하는 당위가 생긴다. 왜냐하면 종교는 현실의 도피처도 아니고 종교와 현실이 종속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역사는 물론 서양의 역사에서 종교가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진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종교 자체의 영향이라기보다 종교인의 자질 문제, 종교를 이용한 정치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어찌됐든 현실 세계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승불교와 대승 불교에 관해서는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이 좋은 안내서가 된다.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불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숭산의 글이 객관적일 수는 없다. 불교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을 엿볼 수 있는 입문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에 비해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는 불교의 핵심 경전이라 할 수 있는 고려대장경 판본을 바탕으로 한 불교의 진수를 선보인다. 여러 판본과 원전의 철저한 해석과 분석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설픈 전문가는 맞대거리 하기가 힘든 것이 도올 저작들의 특징이다. 이 책 또한 해박한 도올의 설명이 특유의 어법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지나쳐 요설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해석은 주관적이고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 교리와의 공통점 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에 대한 기본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비판적이고 냉정한 분석과 논리적인 주장은 새겨 들을만하다.

“형체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지 말라
이는 사도를 행함이니
결단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 - P. 401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있어도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생에 대한 집착과 외물에 대한 유혹은 쉽게 벗어버릴 수도 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곧 해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행 방법과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곳에 열반은 자리한다. 어떤 형체나 음성으로도 여래를 감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 내가 보았던 수많은 불상들과 목탁 소리에도 여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순간을 사는 인간과 영원을 꿈꾸는 종교는 여전히 불협화음으로 불화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이 낳은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종교들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 제대로 알고 바르게 믿을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나도 종교를 가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07031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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