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
김영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강물처럼 흘러왔다’는 작가의 말이 잔잔한 물결에 작은 파문처럼 일렁인다. 김영현의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아니 어떤 소설이 동물에 대한 탐구란 말인가라고 되묻는다면 할말이 없지만 이 책은 김영현이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비의감을 드러낸다. 종교와 결부되어 왜 태어났니를 물어보면 참 난감하다. 인간의 탄생에는 선택이 없다.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으니 죽음은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에 해답을 달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행복할까 불행할까. 그 대상이 신이어도 아니어도 좋겠지만 문제는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는 데 있다. 신산스런 삶에 때때로 환한 빛이 비춰지거나 제 길을 찾은 듯해도 길은 이내 끊겨버리고 벼랑이 기다리고 있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이후 처음인가 싶어 책날개를 살펴보지만 그간 김영현의 책을 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소설은 참으로 낯설고 생경하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분류할 수 없다. 다만 특별한 경우와 예외적인 상황들을 상상할 수는 있다. 그런 것들이 소설 속에서 독자들과 만나게 되면 현실감을 상실하거나 비현실적인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식상하고 지루한 일상의 재현에 불과하다. 물론 표현하는 태도나 언어의 사용 방식에 따라 일상에 탄력이 붙고 재미와 웃음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은 스토리 자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무딘 감각들을 일깨우며 발뒤꿈치를 간지럽게 한다.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모두 말할 수 있나. 그런 것들이 소설이 될 수 있나. 더구나 김영현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추리 소설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은유는 죽어 있고 익숙하고 짐작할 만한 표현들은 독자를 지루하게 한다. 문장에 탄력이 떨어져 스토리를 중심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정상에 올라 소리 한 번 지를 목적으로 등산을 하는 것과 같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겸허를 배우지 못하는 등산이 즐거울 리 없다. 독자는 소리를 지르기 위해 산 정상에 서지 않는다.

 인간 구원의 문제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설은 고전에서나 사용했던 방법이다. 방법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읽는 것이 즐겁지 않다. 독자 개인의 성향이겠으나 즐겁지 않은 책읽기에 누가 나서겠는가? 낯선 사람들은 정말 낯선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구속되는 동연과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동생 성연을 중심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한 소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그 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확인시켜 준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가.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죄의 기준이 있든지 간에. 하지만 이처럼 파렴치한 인간을 정점으로 그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는 방식은 지루하고 감동이 없다.

 탐욕과 물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분명하며 인간의 삶은 과연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다. 종교적 관점이나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를 소설로 부딪히게 될 때 사람들은 당혹스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박자 늦게, 혹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그 문제와 만나게 되길 바란다. 나의 바람일지 모르나 추리 소설 형식으로 충분히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무거운 주제에 비해 분량이 부족하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끈끈하지 못해 보인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가 있고, 시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되는 문제가 있다. 후자를 다루고 있는 <낯선 사람들>은 읽을만 하지만 권할만하지 못하다. 이상하게 식상한 표현들과 죽어버린 은유가 눈에 거슬리는 문장들이 많았다. 소설의 내용과 형식 어느 쪽도 소홀이 할 수 없고 분리 될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어긋나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 조금 넘게 부족한 소설을 만난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더욱 어렵다.


070309-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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