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 살림지식총서 271
이은정 지음 / 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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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눈빛 때문에 두 번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감동이겠지만. 김수영의 눈빛과 정호승의 눈빛이었다. 사진과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형형한 눈빛에서 뿜어나오는 서늘함을 잊을 수가 없다.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 혹은 그녀의 눈빛을 평생 간직한다면 나는 문학, 특히 시를 처음 접할 때 두 시인의 눈빛과 마주친 강렬함을 기억한다.

 특히 김수영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상징이 되어간다. 그것은 이미 죽은 시인에 대한 경외감이 만들어낸 허상과 맹목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가 말하는 세상과 삶에 대한 냉소는 여전히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처럼.

 김수영의 대표작이나 그의 시세계를 대표하는 시는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시가 있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거대한 뿌리, 1977>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시를 다시 읽어본다. 이은정의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오래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시다. 불안한 그의 얼굴은 선명하게 각인되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그 얼굴은 누구나 가슴 속에 숨어 있다. 아니 어둠 속에서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로 해서’ 사랑을 배웠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말이다.

 이은정의 김수영론은 양극에 놓인 주제를 중심으로 그의 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진과 은폐, 방과 거리, 정지와 속도, 적과 사랑, 시인과 속인이 그것이다. 한 사람의 시를 양극에 세워두고 비교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해 보인다. 시인의 추구했던 시는 극단적이지 않으며 몇 가지 분류법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면면과 특징들을 집어내는 저자의 방법이 낯설지는 않다. 왜냐하면 김수영이 살아냈던 시대와 김수영의 삶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시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지극히 고전적인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정신’에 가장 치열했던 시인 중에 한 사람이 김수영이기 때문이다. 그의 온몸시론이 주는 울림은 여전히 유효하며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시를 정의할 순 없지만 김수영처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극명하고 자신있게 주장했던 시인도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언제나 끊임없는 모험 앞에 서 있다’는 에필로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흔들리는 시대 상황에서 시인이 걸어야 했던 형극의 길을 온몸으로 견뎌냈던 치열함과 열정은 ‘자유’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시적 자유와 생활인으로서의 자유, 모든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영혼의 자유를 갈망했던 김수영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정수이다. 그의 시는 물론이고 산문이 보여주는 울림은 영원하다. 손때 묻은, 웃돈 주고 구입했던 김수영 전집 초판본의 먼지만큼 세월이 쌓여가지만 그에 대한, 그의 시에 대한 경건함은 깊어만 간다.


07030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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