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소설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9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책세상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서 가장 불효했던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난센스 퀴즈의 답은 에밀 졸라.

 소설보다 먼저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는 선언문을 통해 행동하는 양심과 지식인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프랑스 문학과 지성사에 빛나는 별들 중에 가장 문제적인 소설가 중 한 사람이었던 에밀 졸라는 <목로 주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책세상’에서 나온 <실험소설 외>는 ‘실험소설’과 ‘소설에 대하여’, ‘비평에 대하여’, ‘공화국과 문학’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대한 견해과 문학 정신의 뿌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글들이 묶여 있다.

 계몽 철학의 시대를 거쳐 도달한 19세기는 다양하고 중요한 문예사조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자연주의’는 낯설고 새롭다. 기존의 문학에 대한 통념이 사라지고 자연과학적 방법을 문학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과격하기까지 하다. 자연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의 방법을 그대로 문학에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실험소설’은 과학과 문학의 만남을 필연적이라고 강변한다.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연구 입문’을 읽고 깊이 감명받은 에밀 졸라는 의사를 소설가로 바꾸어 놓으면 그대로 자신의 주장이 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이렇게 강렬하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용기에 해당한다.

 우회적인 방법은 안전하지만 개성이 없다. 에밀 졸라의 선명한 주장이 담고 있는 위험성만큼이나 매력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소설에서 직접 적용했지만 그의 시대는 길지 않았다. 그를 따르는 소설가가 많지 않았고 문학적인 성취가 뛰어난 작품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순환하고 역사는 반복된다.

 작가는 의사처럼 사회의 메커니즘을 파악해서 처방전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놀라운 주장이다. 작가의 역할과 문학의 효용에 대한 지루하고 역사적인 논의와 관련해서 이렇게 명쾌하고 자신있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 있을까 싶다. 뚜렷한 목적의식과 작가의 소명의식은 작품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에밀 졸라는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것을 실천한다.

 졸라의 ‘실험소설’에서 주장하는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의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타인의 다른 행동들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정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고찰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실험적 방법에 의존한다.(클로드 베르나르, 실험의학 연구 입문)” 내가 앞서 말한 모든 것은 과학자의 문장인 이 마지막 세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 P. 25

고전주의적, 낭만주의적 문학이 스콜라 철학과 신학 시대의 문학이었던 것처럼, 실험소설은 한마디로 우리 과학 시대의 문학이다. 이제 응용과 윤리라는 중요한 문제로 넘어가자. - P. 37

 인물들의 태도나 행동은 자연과학적인 실험과 관찰, 즉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현상으로 나타난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고 밝혀 나가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에밀 졸라는 주장한다. 소설을 읽는 목적과 대하는 태도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현대 소설은 에밀 졸라에게 일정 부분 빚지고 있는 부분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설가들에게 내면화 되어 있는 부분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에밀 졸라의 영향력을 확인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재현하고 우리의 처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돕는 역할을 소설은 할 수 있다. 그것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며 사명이다. 그의 주장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소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주의로 분류되는 그의 주장이 가진 문제점은 사실주의와의 변별점이다. 현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연주의는 보다 과학적이고 인과적인 관계에 무게를 둔다. 실험과 관찰이라는 과학적 방법에 철저히 기대고 있지만 이전의 소설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사실적이고 치밀한 완결성을 보여준다. 명확하게 분류할 수는 없지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초점은 아니다.

 <실험 소설 외>는 에밀 졸라의 소설과 비평 그리고 문학에 대한 생각들을 명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역자 유기환의 해설은 에밀 졸라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에 도움을 준다. 가보지 않은 길을 누군가 먼저 걸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무관하게 용기와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자신의 신념에 기댄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0702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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