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여기 머문다 -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경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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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수상하는 문학상은 단 한 명에게 수상을 안겨주어야 한다. 당연한 규칙이지만 많은 것을 함의한다. 당해연도에 발표된 소설들의 편차와 무관하게 습관적으로 누구에겐가는 상을 안겨야 한다. 이것이 문학상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매년 수상하는 작품들이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력적이고 뛰어난 작품이 나온 해도 있고, 기대 이하의 작품이 수상하기도 한다.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은 없습니다’라고 발표할 만한 용기(?)는 없을까? 문학상의 권위를 떠나 수상작이 출판사에 안겨줄 경제적 이익과 수상자가 안게 될 명예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른 한 번째 이상 문학상,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가 나왔다. 책꽂이 한 켠에 스물 한 권째가 꽂혔다. 이상 문학상과 함께 세월이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은 문학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한다. 하지만 매년 작품집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감동과 감회는 부침이 심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별 감동도 큰 울림도 없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상처는 일상적이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일이다. 비극적인 상황 인식이지만 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이될 뿐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감정의 결들은 미세한 떨림과 섬세한 울림으로 표현된다. 섹스에 탐닉하고 상대를 속박하는 결혼관계가 결국 파경을 몰고 오고 머나먼 이국에서 섹스없는 백색결혼을 고민하던 주인공에게 빛의 환영이 보인다.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은 무엇인가를 점검해야한다. 아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해 보아야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내용을 너머선 문학적 성과에 있다. 수상 선정 이유에서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이해되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과 이해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 소설과 대중 소설의 벽을 허물었다는 이태동의 평가보다는 허무과 열기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온당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혹은 태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장일치로 한 작품을 선정하면 핵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독자의 평가도 달라진다. 어쨌든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미흡하는 쪽에 과감하게 한 표 던진다.

 내용과 관계없지만 우수상 수상작의 순서를 등단순서로 한 것은 엽기다. 이전처럼 가나다순이 합리적이다. 군대도 아니고 문단 짬밥 순으로 우수상 수상작 순서를 정하다니 어이가 없다. 문단 권력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싹이 트고 내면화된다. 그들만의 서열과 위계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스치듯 비춰진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

 한창훈의 ‘아버지와 아들’이 내뿜는 사투리의 힘. 입말이 보여주는 구수함과 부자 간의 대화가 생활의 일부로 녹아들어 감칠맛이 난다.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발상이 기발하며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소도시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주인공을 오히려 에피소드 형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적절한 배치가 흥미롭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젊은 작가의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백이 날카롭고 진지하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했다는 권여선의 ‘약콩이 끓는 동안’이나 편혜영의 ‘첫번째 기념일’은 밋밋하게 다가왔고,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감각에 의존하고 있어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유일하게 매년 구입하는 책에 대한 느낌도 생각도 매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설과 문학상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의 문학적 성과와 미래에 대한 격려가 내포된 것이 문학상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쏟아지는, 혹은 명멸하는 숱한 단편들 중에서 매년 옥석을 가리는 작업의 힘겨움과 독자들과의 약속 사이에서 분명한 자세를 보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과 함께 지난 해의 문학적 성과를 기억하는 책으로서 의미를 가진 책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그냥 읽고 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입맛과 손맛이 씁쓸한 것은 나 혼자 느끼는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07020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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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魔 2007-03-0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을 읽으신 소감이 저와는 틀리기에 이 주소를 제 블로그에 링크합니다. 저도 다른 분들의 시선을 통해 제 시야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벌써 21권째라니... 존경스럽습니다. 전 이제 겨우 5~6권째인듯 싶은데요.. by http://samma.org

sceptic 2007-03-0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간다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