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낚시통신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치 은어처럼 윤대녕의 소설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새롭다. 최근작 <제비를 기르다>에 이어 초기 작품집 <은어낚시통신>을 읽는 동안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았다. 물론 소설가에게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흐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그 흐름에 맞춰 소설이 국수 가락처럼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흘러온 강물처럼 한 작가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윤대녕의 ‘은어’을 읽다가 ‘음력 삼월 삼일에 강남에서 왔다가 구월 구일에 돌아간다죠?’라는 구절을 보고 ‘제비를 기르다’를 떠올렸다. 윤대녕의 작품 세계가 원점으로 돌아온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돌고 돌아 찾아온 곳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리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생의 비밀들을 찾아내지 않을까 싶다.

 은어와 제비는 돌아온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의 초기작들은 ‘은어낚시통신’에서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존재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머나먼 여정으로 보인다. 이후 펼쳐지는 다양한 시도들과 소설들이 보여주었던 작업들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떤 순간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말해질 수 없는 순간, 혹은 찰나의 감정들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윤대녕의 소설은 이 순간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말해질 수 없는 부분들을 부단히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주의 붕괴이후 사회적 관점이나 자본에 대한 치밀한 세부에 접근하기 힘겨웠던 90년대의 소설은 사소설에 가까운 흐름들을 보여왔다.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등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윤대녕의 소설은 사회적인 문제들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과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듯하다. 자칫 감정의 과잉 토로나 시대의 유행에 민감했던 소재들의 끼워넣기가 부작용으로 드러날 수 있으나 작가의 의도와 소설의 흐름은 무난하게 비껴가고 있다.

 ‘January 9, 1993 미아리 통신’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떠올린다. 점치는 여자의 이력과 점집을 찾아가는 세 명의 젊은이(?)들의 모습이 90년대 초반의 풍경을 을씨년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서 사회로의 확장은 결코 쉽지 않다. 그 모든 균형감각과 폭넓은 주제와 시야를 한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특징없는 백화점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윤대녕은 이제 반환점을 돌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문체와 행간에 숨어있는 모호한 환상들은 작가 특유의 개성이 된다. 윤대녕스러운 이야기 전개와 어법들이 주는 매력은 언제나 은근하다. 뜨겁게 달아오르거나 열광할 수 없는 목소리지만 쉽게 외면할 수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은어낚시통신,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카메라 옵스큐라’ 등에서 보여주는 현실과 환각 사이의 거리감은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은어, 국화옆에서’는 연애에 대한 환상과 현실과의 거리를 보여준다. 엉뚱하게도 철저하게 자본의 힘과 논리 현실 사이의 감시망이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을 나는 인상깊게 읽었다. 좋은 작품이다.

 그의 소설들을 현실과의 거리감이라고 보는 것은 망원경으로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보여지는 현실과 인물의 내면 풍경은 생활과 거리가 멀다.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는 광고 카피처럼 그의 소설에서 나는 생활의 냄새를 맡기 어렵다. 아쉬움으로 보아야 하나 작가의 특징이자 매력 혹은 장점으로 보아야 하나?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다.

 처음과 현재를 확인하고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내가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 갖는 관심은 물론 ‘제비’에서 비롯됐다.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미래는 진행될 것이고 윤대녕의 작품들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될 것이라 믿는다. 맥없이 주저앉아 그대로 쭉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어떤 ‘느낌’ 때문이다. 지나친 해석일지 모르지만, 벌써 다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버일 수 있겠지만 어쩐지 다음이 더 기대된다.


070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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